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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_ 약속을 바라보는 사람(창 13:1-16)

my gospel 2024. 5. 30. 12:41

아브라함 _ 약속을 바라보는 사람(창 13:1-16)


<7> 약속을 바라보는 사람

창 13:1-16


들어가는 말

원숭이에게 아침에 바나나 2개를 주고, 저녁에 바나나 3개를 주었더니 막 화를 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침에 바나나 3개를 주고, 저녁에 바나나 2개를 주었더니 참 좋아하더랍니다. 우리는 원숭이를 보고 참으로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원숭이는 바로 눈앞에 이익만을 볼 줄 아는 매우 근시안적인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위대한 일을 해내는 사람들은 미래의 영광을 위해 현재의 수고와 희생을 기쁘게 감내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이러한 사람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현재 바로 얻게 되는 기쁨만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미래에 얻게 될 기쁨을 위해 현재의 고난을 참을 줄 아는 사람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운데 말

1. 세상을 바라보고 싶을 때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라고 말씀합니다. 롯은 이제 자신의 삶의 터전으로 떠나가고, 아브라함은 이제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식이 없었기에 조카 롯을 친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깊은 애정을 베푼 롯과 작별하고 몹시 쓸쓸했습니다. 혼자 남은 아브라함은 이 시점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생각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아브라함도 하늘을 쳐다보지 않고, 이제 아래를 내려다보고 싶은 유혹을 느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대학교 3학년 때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헌신된 삶을 살아오고 있습니다. 수년간 선교단체 사역을 했습니다.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이 이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은 다들 자기 자리를 잡아가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물론 부러워해본 적은 없습니다만, 한번은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옆에 괜찮은 자가용이 올 때 순간 스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아주 잠깐 드는 생각에 불과했지만, 나도 주님의 부르심과 상관없이 살아가고 있다면 좋은 차 굴리고 있을 텐데!!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면 하나님 앞에서 헌신을 재고하게 되고, 세상과 타협한 채 살아가게 될 수도 있습니다. 급기야는 영적인 침체와 위기를 경험하게 됩니다.
 
물론 오늘 말씀에서는 아브라함이 그런 영적인 위기 가운데 있다고 말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브라함의 심리 상태가 불안할 수 있었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인생에서 믿음을 새롭게 하셔야만 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시곤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새롭게 하셔야 할 때는 어김없이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부르심을 새롭게 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2. 약속을 바라보라!
(13:14-16)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고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눈을 크게 뜨고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나안도 영원한 그들의 소유가 되게 해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자녀를 생산치 못하는 아내 사래를 통해 그의 후손들이 땅의 티끌과 같이 많아지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함께 살펴보고 싶은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단지 약속으로만 주셨다는 것입니다. 보이는 동서남북의 땅을 약속하셨지만, 자신이 죽을 때는 단지 무덤만을 소유했을 뿐이었고, 여호수아 시대에서야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고, 솔로몬 시대에 가서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전체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자손을 약속하셨지만, 이삭은 10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얻게 됩니다. 땅의 티끌 같은 자손을 약속하셨지만, 거의 600년(?)이 지나 출애굽 할 때서야 비로소 200만 명 정도 되는 민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솔로몬 대(代)에 이르러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아짐으로써 성취되었습니다(왕상 4: 20), 뿐만 아니라 이 언약은 아브람을 믿음의 조상으로 하는 엄청난 영적 후손들이 지금도 증가하고 있음으로써 여전히 성취되고 있습니다.(갈 3:7)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브라함은 동서남북 사방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날 아브라함은 사방에 하나님의 자녀로 가득 채워질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저 아직 소유하지 못한 땅을 본 것이 아니라 이미 소유한 땅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모든 지경에서 자신의 자손들의 하나님의 영광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와 자신의 운명을 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눈을 들어 앞에 있는 자기 소유를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아가도록 강권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당장 주시겠다고 말씀하지 않고 미래에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먼저 응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응답에 대한 약속을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알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멀리 내다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나가는 말
우리에게도 하늘에 대한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약속해 주십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에 관심이 없는듯합니다. 사람들은 당장 얻을 수 있는 것을 원하지, 미래에 주어질 약속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설사 나중에 받을 것이 더 좋을지라도 당장 눈앞에 이익에 눈이 멀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천국을 위해 살지 않고 지상에 이룰 왕국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아침에 3개의 바나나를 주라고 화내는 원숭이를 무시하지만 바로 우리에게 그런 모습이 있는 것입니다.
(고전 2:9)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을 보았습니까? 그것만을 얻기를 갈망하십니까? 그리스도인들은 근본적으로 미래의 소망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약속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늘나라를 바라보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대로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는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하늘을 한 번만 쳐다봐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