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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_ 죽음에서 생명으로 (창 11:27-12:4)

my gospel 2024. 5. 30. 12:29

아브라함_ 죽음에서 생명으로 (창 11:27-12:4)


아브라함_ 죽음에서 생명으로 (창 11:27-12:4)
<2> 죽음에서 생명으로 부르심
창 11:27-12:4



들어가는 말
 지난주에는 창세기 12:1-4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이 말씀은 창세기의 중심이 되는 말씀이며, 아브라함의 인생 전체를 규정하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창세기 11:27-32 말씀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11:27-32에서는 부름을 받을 때의 아브라함의 가정에 대한 배경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가운데 말
1. 죽음 가운데 살아가는 인생
 여기서 주목해야 할 중요한 두 가지 말씀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죽음입니다. (11: 28)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 우리에서 죽었더라” (11:32) “데라는 이백 오 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음은 창세기 초반부에서부터 강조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창 5장에 아담 자손의 계보를 언급할 때 ‘죽고 죽었더라’고 말합니다. 족보에서 죽음을 말씀할 때 그냥 단순히 사람들이 죽기 때문에 죽었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고 신학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타락하기 전 인간은 원래 죽지 않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인류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난 인류, 타락한 인류는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가장 정확하게 묘사해 주는 단어는 바로 ‘죽음’입니다. 하나님 없는 문명, 하나님 없는 인생은 어떤 인생입니까? 바로 죽은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에서 떠나서는 저주와 고통만이 존재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류의 운명입니다. 아무리 화려해 보이고 성공한 삶을 살아갈지라도 하나님과 생명의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인생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오늘 말씀에 “죽었더라”는 것은 바로 이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동생 하란은 죽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도 죽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 가문의 영적인 주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류가 죽음에 지배를 받고 있듯이, 아브라함 가문도 죽음의 지배 가운데 있었습니다. 결코 죽음에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두 번째는 불임입니다. 12장에서 아브라함이 부름을 받았을 때의 나이는 75세였습니다. 사래의 나이는 65세쯤이었습니다. 그런데(11:30) “사래는 잉태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의 아브라함 가정의 상황을 묘사하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들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아직 안 생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 기다린다고 생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사라는 자연적인 방법과 당시의 의료적인 방법으로는 생식이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사라는 영원히 아이를 잉태하지 못할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나 동양인들 사이에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여성과 가정에 커다란 저주였습니다. 자식을 낳지 못한다는 것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는 미래의 가능성의 문이 이미 닫혀버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철저하게 가능성을 상실한 사람들입니다. 전혀 소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가문은 자신의 세대를 마지막으로 하고 문을 닫게 될 운명이었습니다.



2. 부르심의 주도권과 성취의 주도권을 가지신 하나님
 이 말씀과 비교하여 아브라함의 부르심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12: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내용을 살펴보면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큰 민족을 이루어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 약속에는 자손을 주시겠다는 약속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정확하게 아들에 대한 약속을 주십니다. (15:4-5)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의 생각과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농부가 다음해의 풍성한 소출을 위해 종자 씨앗을 남겨 둡니다. 지혜로운 농부라면 가장 건실한 씨앗을 선택하여 남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온 땅의 제사장 나라가 되어 열방을 축복할 나라를 세우실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을 부르겠습니까? 가장 건강한 신랑 신부를 부를 것입니다. 건강하여 열 명의 자식을 거뜬하게 날 수 있는 사람들을 부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가정을 부르시고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고,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능력으로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사람들,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람들을 부르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이를 주시는 것입니다. (21:1-2)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아브라함은 부름 받은 지 25년이 지난 100세에 아들 이삭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 가운데로 부르십니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은 그것을 저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응답합니다. 우리의 생각은 이것입니다. “하나님, 그것은 제가 할 수 있겠네요! 그러니 그것은 하겠습니다.” 그러나 아셔야 합니다.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 누구도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응답해야 합니다. “하나님, 그것은 제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옵소서! 단지 저를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도구로 겸손히 드립니다.” 



3. 생명으로의 부르심
 아브라함은 자신의 힘으로 불가능한 것을 알았지만,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21:1-2)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의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절망에서 미래에 대한 소망의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아브라함 가정의 문제는 아브라함 자신의 지혜와 힘으로는 절대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실 때만 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가정을 부르신 사건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임한 아이 낳지 못하는 운명은 전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뭔가 종교적인 의무를 짊어지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활기를 잃어버리고 백지장 같은 얼굴을 하고 근엄한 목소리를 내며 성경책을 한 손에 끼고 주일날 교회에 나가는 따분하고 고리타분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처럼 경이로운 사건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처럼 역동적인 사건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처럼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사건은 없습니다.



나가는 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사건을 통해 나타난 영적인 원칙은 모든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동일합니다. 사실 우리 모두의 운명도 아브라함의 운명처럼 “사래는 잉태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운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실 때 우리의 불임의 저주는 극복되고,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는 말씀처럼,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어 아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