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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의 통치자& 의의 통치자 (창세기 10:1-32)

my gospel 2024. 3. 11. 19:13

 

불의의 통치자& 의의 통치자 (창세기 10:1-32)


<45> 불의의 통치자& 의의 통치자
창세기 10:1-32


 한근호 목사


들어가는 말


 어제는 창세기 10장 말씀을 통해, 온 인류가 노아로부터 기원되었음을 살펴봄으로써, 결국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의 하나님, 열방의 하나님이신 것을 나누었습니다. 오늘도 창세기 10장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한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 

 창세기를 공부할 때 한편으로는 때 원역사와 족장사로 나누어 불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족보를 중심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음을 나누었습니다. 창세기에서 족보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창세기 10장에도 역시 족보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입니다. 어제 잠깐 살펴본 것처럼 2-4절에서는 야벳의 족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벳 족속은 주로 소아시아와 유럽 족속입니다. 6-20절에서는 함의 족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함은 성경에 많이 등장하는 이름입니다. 중동과 남아프리카와 이집트 지역의 사람들은 주로 함의 계열의 족속들로 분포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끊임없이 전쟁했던 족속입니다. 이 족속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과 갈등과 전쟁으로 고통의 세월을 보냅니다. 21-31절은 셈의 족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셈의 계열에서 아브라함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래서 11장에서는 다시금 셈의 족보만을 다루고 있습니다.



(창세기 10장 / 개역개정)
1.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2. 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
3. 고멜의 아들은 아스그나스와 리밧과 도갈마요
4. 야완의 아들은 엘리사와 달시스와 깃딤과 도다님이라
5. 이들로부터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언어와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
6.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7. 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8.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9.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10.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11.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12.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을 건설하였으니 이는 큰 성읍이라
13.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밈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14.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더라 (가슬루힘에게서 블레셋이 나왔더라)
15. 가나안은 장자 시돈과 헷을 낳고
16. 또 여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17. 히위 족속과 알가 족속과 신 족속과
18. 아르왓 족속과 스말 족속과 하맛 족속을 낳았더니 이 후로 가나안 자손의 족속이 흩어져 나아갔더라
19. 가나안의 경계는 시돈에서부터 그랄을 지나 가사까지와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을 지나 라사까지였더라
20. 이들은 함의 자손이라 각기 족속과 언어와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
21.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
22.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
23. 아람의 아들은 우스와 훌과 게델과 마스며
24.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았으며
25.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26. 욕단은 알모닷과 셀렙과 하살마웻과 예라와
27. 하도람과 우살과 디글라와
28. 오발과 아비마엘과 스바와
29. 오빌과 하윌라와 요밥을 낳았으니 이들은 다 욕단의 아들이며
30. 그들이 거주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이었더라
31. 이들은 셈의 자손이니 그 족속과 언어와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
32. 이들은 그 백성들의 족보에 따르면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그 땅의 백성들이 나뉘었더라



가운데 말

1. 특이한 사냥꾼- 니므롯
 함의 족보에 눈에 띄는 인물이 있습니다. (창세기 10:8-9)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그는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군이로다 하더라” 8절에서 등장하는 구스라는 사람은 함의 아들입니다. 그러므로 니므롯도 함의 자손들 중 한 사람인 것입니다. “니므롯”이란 이름은 “반역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반역하리라” 혹은 “우리가 반란을 일으키리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이름이 암시하듯 니므롯은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여 침략과 압제로 백성들을 지배한 당대의 폭군이요 전제 군주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니므롯을 고대의 영웅이었다고 소개합니다.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영걸”(英難)은 좋은 의미로는 “용사”, “영웅”이란 뜻입니다. 하지만 나쁜 의미로는 “폭군”, “압제자”란 의미입니다.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 즉 “폭군”, “압제자”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니므룻은 세계 최초로 강력한 제국을 이룩한 전제 군주요, 백성을 무력으로 통치한 폭군이었습니다. 니므롯은 고대 사회의 영웅이었습니다. 결국 니므롯의 지도력 아래에서 세상은 하나님께 반역하는 사회를 형성해 갔던 것입니다.

 성경은 니므롯이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는 말 이외에도 그에 대해서 이렇게 덧붙이고 있습니다. (9)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니므롯은 사냥꾼이었습니다. 고대 세계에 있어 사냥은 단순히 동물을 노획하는 일을 넘어, 곧 전쟁 연습이요 힘의 단련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에는 사냥을 잘하는 사람이 바로 통치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당시 전쟁 영웅을 “사냥꾼의 제자”로 칭하기도 했습니다.

 니므롯은 사냥꾼일 뿐만 아니라 “특이한” 사냥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니므롯이 단지 짐승을 사냥한 것이 아니라, 전쟁을 일으켜 인간을 살생했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의 사냥은 짐승들과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관계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니므롯은 마치 짐승을 사냥하듯 사람을 사냥하는 전쟁을 즐겨 행한 침략자요 전쟁광(戰爭狂)이었습니다. 니므롯은 사람을 사냥함으로 말미암아 포악한 전제군주처럼 무력과 억압에 의해 그 자신의 왕국을 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에는 “하나님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데, 마치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이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요한 칼빈은 본문 말씀을 주해하면서 말하기를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은 “하나님과 맞먹는 자세로” 행세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견지에서 70인역은 “여호와 앞에서”란 말을 “여호와께 대적하는”이라는 뜻으로 번역하였습니다. 니므롯은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자신의 힘만을 제일로 믿는 폭군이요 압제자였습니다. 결국 니므롯은 하나님을 향한 반역의 나라를 세워 반역의 백성들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2. 10-12절은 니므롯이 세운 왕국에 관해서 이렇게 기록하였다. (창세기 10:10-12)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이는 큰 성이라)을 건축하였으며” “시날 땅”은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에 메소포타미아 계곡 하류 지대를 가리킵니다. 초기 이곳에는 수메르 족속(Sumerians)이 거주했으나(B.C. 3500년 경), 후에 셈계의 유목민인 아카드 족속(Accadians)이 침투해 들어와 정착하게 되었는데(B.C. 2350년 경), 후일 이들에 의해 바벨론이 세워졌습니다. 오늘날의 이라크 지역입니다. A.D. 1 세기경의 유명한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바로 니므롯이 바벨탑을 쌓도록 선동하고, 또한 주동한 인물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니므롯은 바벨론 제국의 창설자입니다. 바벨론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세력을 상징하는 나라입니다. 이사야를 비롯한 예언서에는 바벨론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것을 수도 없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바벨론이라는 나라는 없어졌지만, 바벨론처럼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나라를 대적하는 세력들은 종말의 때까지 존재함을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교회와 바벨론 간에 있을 영적인 전투에 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바벨론이 무너지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 18:2)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소결론>
 오늘 말씀에서는 니므롯은 하나님께 반역했고, 하나님을 반역하는 문화를 만들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반역한 니므롯이 걸어간 길은 폭력으로 사람들 위에 군림하여 다스리며 전쟁으로 세상을 정복해 가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단지 니므롯이라는 한 사람만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에 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류 역사 가운데 니므롯과 같은 통치자는 인류 역사 가운데 계속 등장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반역하고, 탐욕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일들은 이 세상 가운데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전쟁이 없는 평온한 시절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적어도 고대시대보다 전쟁이 줄어드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통계적으로도 현대가 고대보다 더 자주 전쟁이 발발하고 있으며 대규모 전쟁이 발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최근 10년 안에 일어난 전쟁만 해도 수없이 많습니다. 유럽에서는 보스니아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중동에서는 걸프 만 전쟁과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아프리카에서도 수단이 지금도 내전 중입니다. 이러한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 특별히 힘없는 여인들과 어린아이들이 이유도 없이 무참하게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입니다.

 선교학에서 10/40 창이라는 지역이 있습니다. 북위 10-40도 지역입니다. 이 지역은 전혀 복음이 들어가지 않았거나 매우 낮은 수준으로만 복음이 들어간 곳입니다. 10/40창 지역 안의 80 퍼센트의 사람들은 마약과 굶주림과 질병과 인권탄압으로 동물과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보면 지옥 그 자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옥을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지옥을 만들었습니다.

 왜, 세상은 폭력과 전쟁이 난무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이미 창세기 3장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인간의 타락이 주원인입니다. 이 세상은 끝없는 타락의 길로 갈 것입니다. 그리고 니므롯과 같은 통치자들이 끊임없이 일어날 것입니다. 인류는 발전해 가고 있고 그래서 유토피아가 올 것이고 우리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십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유토피아를 이룰 수 있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타락해 가고, 폭력과 전쟁이 난무할 것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인간에게 평안이 없습니다. 그리고 죄인인 인간이 통치하기에 평화를 누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소결론> -의의 왕 예수 그리스도
 그렇다면 인류의 미래는 암담합니까? 니므롯과 같은 통치자가 세상을 억압할 것입니까? 바벨론이 세상을 장악하게 되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오시지 않았다면 인류는 절망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가가 예수님에 관해 예언한 말씀을 살펴보십시다. (사 9:6-7)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예수님은 폭력적이고 군림하고 파괴하는 왕이 아니라, 평강의 왕이시라고 말씀합니다. (사 42:1-4)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세상을 통치하시는 왕이신 예수님의 성품에 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비와 긍휼로 우리를 통치하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군림과 억압과 전쟁으로 다스리는 니므롯과 같은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까? 평화의 왕, 겸손의 왕, 자비의 왕이신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세상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로 나가기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마음의 중심과 우리의 삶의 중심 가운데로 초청합니다. 우리를 다스려 주옵소서!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옵소서! 그래서 우리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 분쟁, 분냄, 군림, 살인의 마음에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오직 의와 평강과 희락만이 우리 가운데 가득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