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함의 죄와 저주 받은 가나안 (창세기 9:18-29)

my gospel 2024. 3. 10. 19:15

 

함의 죄와 저주 받은 가나안 (창세기 9:18-29)


<43> 함의 죄와 저주 받은 가나안
창세기 9:18-29 (22-23 절을 중심으로)


한근호목사


들어가는 말


 지난 말씀에서는 노아가 포도주를 먹고 취하여 실수하는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노아는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벌거벗은 실수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은 단순히 노아의 실수만을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노아의 실수에 대한 아들들의 반응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노아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가 실수했을 때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 살펴보면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신앙인의 태도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9장 / 개역개정)
18.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
19. 노아의 이 세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니라
20.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22.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23.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26.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28. 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오십 년을 살았고
29. 그의 나이가 구백오십 세가 되어 죽었더라



가운데 말

 

1. 허물을 파헤치는 함
 창세기 9:22 절 말씀을 보십시오. (창세기 9:22)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함은 노아의 하체를 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함의 잘못은 아비의 하체를 우연히 목격한 그 사실에 있지 않습니다. “보고”와 “고하매”라는 두 동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로 “보다”는 히브리어로 “라아”인데, 이 단어는 지나가다가 슬쩍 보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흥미 있게 계속해서 주목했다는 뜻입니다. 관심을 가지고 보았다는 말입니다. 결국 함은 어느 날 우연히 아버지가 술에 취해 벌거벗고 누워 있는 장면을 보고 놀라서 후다닥 뛰어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는 아버지의 부끄러운 광경을 계속 보면서 즐겼습니다. 함의 가장 큰 잘못은 아비의 하체를 악의적(惡意的)으로 즐기며 모욕한데 있었습니다.

 둘째로 함은 곧바로 “두 형제에게 고했습니다.” 여기서 “고하매”라는 동사는 “경멸과 조롱의 태도로” 떠벌리며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함은 아버지의 수치를 보고 밖으로 나가 두 형제에게 ‘염려한다.’는 이름으로 고발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와주는 척하면서 욕합니다. 걱정해주는 척 하면서 불을 지르는 것이 인간입니다. 만일 진정으로 걱정이 되었다면 하체를 보고 끝냈을 것입니다. 함의 마음은 그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알리고 소리 지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형들에게 가서 얘기를 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그럴 수 있느냐. 아버지가 하고 있는 일을 보라. 아버지가 수치스러운 일을 했다. 우리 아버지는 문제가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함은 아비의 수치를 사랑으로 덮어 주기는커녕, 오히려 다른 두 형제(셈과 야벳)에게 그저 재미있는 화젯거리를 이야기 하는 것처럼 이야기 했습니다. 함은 아버지의 수치에 대한 염려는 안중에도 없고, 오히려 아버지의 실수를 기뻐하고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녔던 것입니다. 놀랍게도 함은 아버지의 수치를 말하는 것에서 쾌감을 얻었습니다.
 
<소결론>
 함의 태도는 이웃의 실수를 즐기는 자세입니다. 이웃이 잘못 되는 모습을 보면서 고소하게 생각하고 은근히 기분 좋아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웃이 당한 어려움, 부끄러움을 내일처럼 여기며 도와줄 생각은 하지 않고 그의 실수를 즐기는 것은 그 마음에 죄악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함은 이러한 태도와 행동으로 말미암아 결국 스스로 저주를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이웃이 실수하고 안 좋은 일을 당했을 때 그 일을 즐깁니까, 아니면 그를 위해 기도합니까?



2. 허물을 사랑으로 덮어주는 셈과 야벳
 함의 의도적으로 아버지의 사건을 목격하고 난 후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수치를 고발했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아들인데 셈과 야벳은 다른 태도를 취했습니다. 23절 말씀을 보십시오. (창세기 9:23)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 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두 형제는 아주 조심스러운 행동을 합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인격을 보호하려는 아들들의 조심스러운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셈과 야벳의 사려 깊은 행동이었습니다. 이런 귀한 태도는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데서 나옵니다. 그들은 비록 실수와 수치 중에 있는 아버지라 할지라도 최대한의 존경과 효로서 자식의 예(禮)를 표한 것입니다. 비록 아버지께서 실수했지만, 아버지는 아버지인 것입니다.

 먼저 “셈과 야벳은 옷을 취하여 어깨에 메고 뒷걸음 쳐 들어갔습니다.”그들은 자기들의 옷을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서 아버지의 하체를 덮고 얼굴을 돌렸습니다. 왜 이렇게 행동하고 있습니까? 이 두 사람은 아버지의 수치를 보지 않고자 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이들은 “아비의 하체에 덮었습니다.” 함은 적극적으로 아버지의 사건을 고발했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듣자마자 얼른 덮어 두고 감추었습니다. 셈과 야벳의 이러한 행동은 문제를 외면하거나 도피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덮어주고 감싸주려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벧전 4:8)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셈과 야벳은 “사랑과 존경으로” 아버지의 수치를 덮어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고 말씀합니다. 아버지의 도덕적 타락은 함에게는 굉장히 큰 문제였지만 셈과 야벳에게는 이것이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습니다. 내게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은 만사가 문제가 되지 않고 내게 문제가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이 문제가 됩니다. 문제는 그저 지나가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문제를 건드리면 문제가 됩니다. 부모는 자식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자녀의 나쁜 습관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드러내지 않고 덮어줍니다 되도록이면 미화시켜 줍니다. 동일하게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고자 한 것입니다.



<소결론>
 당신은 이웃의 실수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봅니까? 함과 같이 이웃의 상처를 드러내어 더 아프게 만들지 마십시오. 셈과 야벳처럼 덮어 주고 사랑으로 감싸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이 일을 기뻐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이웃의 허물을 들춰내느냐, 감싸주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저주와 축복으로 나뉘기 때문입니다.



-----추가강의-----
 성경은 정당한 비판을 인정합니다. 올바른 비판은 역사를 발전시키는 소중한 원동력입니다. 성경은 이런 의미의 비판을 분별이라고 말합니다. “분별”이란 어떤 일의 상황과 요인을 모두 살펴보는 것입니다. 곤란에 빠진 사람을 궁지에 모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돕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처지를 알지도 못하면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비판입니다. 성경은 이런 비판을 금지합니다. (마 7:2)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함은 아버지 노아에 대해 분별하지 못하고 비판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엇갈린 운명
1) 함에게 내린 저주
 (창세기 9:24-25)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그 결과 함에게는 저주가 내렸습니다. 중요한 점은 함에게만 저주가 내린 것이 아니라 그 아들 가나안에게 저주가 집중되었다는 것입니다. 25절 말씀을 보십시오. (창세기 9:25)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아버지보다 아들에게 더 큰 저주가 내렸습니다. 여기서 먼저, 함이 저주받은 흑인이고 셈은 황인이고 야벳은 백인이라는 이야기는 근거 없는 것임을 말씀드립니다. 이는 과거 백인들이 흑인들을 착취하려 꾸며 낸 억지소리입니다.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왜 가나안에게 저주가 내렸는가?’입니다. 자녀를 두신 분들은 쉽게 이해가 갈 것입니다. 내가 당하는 괴로움보다 자녀가 겪는 고통이 열 배, 아니 백  배나 더 큰 아픔을 가져 오는 법입니다. 특히 자신의 잘못 때문에 자녀가 벌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세상에 그보다 더 끔찍한 저주는 없을 것입니다. 함이 받은 져주는 바로 자녀의 고난을 응시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의 자녀가 복되고 아름다운 삶을 살기 원합니까? 그렇다면 지금 당신의 이웃이 저지른 실수를 관대히 보아 주십시오. 남을 쉽게 비판하는 사람은 그 자녀가 수모를 당한다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엄중하고 엄숙한 징계는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라”는 말씀에 압축되었습니다. 남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런데 종의 종이 되라고 할 때는 인간의 자존심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것입니다. 당신이 자녀를 사랑한다면 이웃의 실수를 함부로 논하지 못할 것입니다.



2) 셈과 야벳이 받은 축복
 26, 27절 말씀을 보십시오. (창세기 9:26-27)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아버지의 실수를 덮어 주고 보지 않은 셈과 야벳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셈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며 그와 동행 하시며 찬양을 받으십니다. 야벳은 셈과 더불어 복을 받았습니다.



<소결론>
 당신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기 원합니까? 이웃을 비판하기보다 황금율을 실천하십시오. (눅 6:3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4. 우리의 허물을 덮어주시는 하나님
 오늘 우리는 허물을 범한 아버지 노아의 허물을 가려준 셈과 야벳의 아름다운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이 장면도 아름답지만, 다른 사람의 죄를 덮어준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피 흘려 죽게 해서 우리의 죄를 덮어주기까지 하셨습니다. 셈과 야벳이 아비의 하체를 덮어주고 얼굴을 돌이켜 보지 않았던 것처럼 하나님이 여러분의 허물을 덮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죄를 드러내 알리거나 지적하지 않고 충고하지 않습니다. 야단치지 않습니다. 회개만 하면 덮어주려고 하십니다. 모른 척 하십니다. 그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덮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수치와 허물을 또한 덮어주는 사랑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마 18 : 21-35) 우리는 우리 부모의 허물을 덮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부모도 연약한 인간일 뿐입니다. 자식이 죄를 짓고 실수를 하는 것처럼, 부모도 죄를 짓고 실수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내가 연약한 것처럼 우리의 부모도 연약한 존재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셈과 야벳처럼 여러분의 부모의 허물과 실수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덮어주시기 바랍니다.

 비단 부모님뿐만이 아니라 여러분의 아내나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인의 허물을 덮어주고 모르는 척 해 주십시오. 남편의 허물을 예수의 이름으로 덮어주십시오. 이렇게 덮어주면 복이 오지만 덮어주지 않으면 저주가 옵니다. 자녀의 허물을 감싸주십시오. 자녀들을 너무 심하게 야단치지 마십시오. 그냥 용서하시고 덮어주십시오.

 인간은 누구든지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들을 향해 지나치게 손가락질 하지 마십시오. 그 죄가 내 안에도 있기 때문입니다. 환경과 여건이 그 사람의 상황이 아니었을 뿐 우리가 그 사람의 입장에 처했다면 동일한 죄를 지을 것입니다.

 부모 형제 자매 교우들의 허물을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도록 예수님의 마음으로 덮어 주십시오. 이것이 노아의 사건에서 배우는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용서했듯이 여러분도 주변 사람들의 허물을 덮어주십시오. 그러면 복을 받습니다.



나가는 말
기도로 나가기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허물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덮어주시고 용서해 주심을 인해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덮어주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 앞에서, 또한 사람들 앞에서 감히 설수 없는 죄인들인 것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의 허물을 덮어주셨던 것처럼, 우리 또한 형제와 자매의 허물을 덮어줄 줄 아는 사람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