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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의 종결과 물러나는 물 (창세기 8:1-5)

my gospel 2024. 3. 6. 14:23

 

홍수의 종결과 물러나는 물 (창세기 8:1-5)


<36> 홍수의 종결과 물러나는 물
창세기 8:1-5


 한근호 목사


들어가는 말


 지난 말씀에서는 홍수가 지구 전체를 뒤덮은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창세기 8장 / 개역개정)
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2.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3.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백오십 일 후에 줄어들고
4. 일곱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5. 물이 점점 줄어들어 열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가운데 말


1. 권념 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8:1a)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여기서 “하나님이 노아를 권념 하셨습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권념하다”는 말은 “표시하다”, “새기다”, “기억하다”란 뜻으로 “마음속에 깊이 새겨 늘 기억하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렇다고 이 말씀이 하나님께서 잠시라도 노아를 잊어버리셨다는 의미는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노아를 생각지 않다가 어느 날 갑자기 생각하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노아는 언제나 하나님의 기억 속에 있던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가족들과 동물들을 기억하셨습니다. 



<소결론>
 ‘잊혀진다’는 것만큼 외로운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외로워하는 것은 ‘잊혀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기억해 준다는 것,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 준다는 것은 복입니다. 인간의 불안과 외로움의 본질적인 문제는 하나님을 잃어버린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잊으셨고 나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될 때 인간에게는 절대고독과 불안이 찾아옵니다.

 1b절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 가족과 동물들의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이해하고 기억하여 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외롭고 고통스럽고 힘들면, 하나님께서 ‘내 고통을 알고 계실까?’라는 의심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노아와 그 가족과 동물들을 기억하고 보살펴 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간섭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계십니다. (사 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그들은 혹시 잊을지 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아시고 기억하십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게 우리를 잘 아시고 기억하십니다. 이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지 아십니까?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힘들고 외로울 때 하나님이 떠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가 건강한 자녀보다 병든 자녀에게 더 관심이 있는 것처럼 문제 있고 상처받은 영혼 고난 중에 있는 성도에게 하나님은 특별히 간섭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고 손에 만져지지 않더라도 의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가장 어렵고 답답할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가까이 계십니다. 가까이 계신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그분은 여러분의 가까이 계십니다. 여러분을 기억하고 계시며 여러분의 신음소리를 듣고 계십니다. 주변 환경이 어렵고 힘들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억하십니다. 이런 믿음이 생기기 시작하면 여러분은 살아납니다. 절망에서 살아납니다. 어떤 병이나 위기 불가능에서도 살아날 줄로 믿습니다.



2. 바람을 일으키시는 하나님
 오늘날 지역적으로 홍수가 일어나며, 얼마 후에 물이 빠지고 홍수가 끝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노아시대의 홍수는 오늘날의 홍수와는 크게 다르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노아시대의 홍수는 온 세상에 물이 넘쳐서 어디에도 육지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단 비가 그쳤을지라도 온 세상에 가득찬 물을 빼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일으키시는 전능한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8:1b) “바람으로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였고” 하나님께서는 물이 감하게 하기 위하여 (8:1) “바람으로 땅 위에 불게”하셨습니다. 자연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언제라도 이 법칙을 사용하실 수 있으십니다. 이 바람은 홍수로 인하여 불어난 물을 증발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불게 하신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엄청난 양의 물을 바람을 통해 증발시킬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바람의 목적은 출애굽기 14장 21절에 언급된 바람의 목적과 동일하였을 것입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홍해 바다를 갈라지게 하셨을 때, 그는 밤새도록 강한 동풍을 불게 하셨습니다. 둘째로 바람은 이스라엘 백성이 걸어서 홍해 바다를 건널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육지를 마르게 하는 작용을 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바람은 해일로 인해 땅을 덮친 물을 다시 바다로 몰아가는 역할을 함으로써 땅 위에 창일한 물을 급격히 감소시켰을 것입니다. 또한 드러난 육지를 마르게 하는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소결론>
 하나님이 노아와 가족들과 동물들을 기억하셨기에 바람을 이용하셔서 물을 빼기 시작하셨습니다. 바람이 물을 원위치로 가게 했습니다. 하늘에서 온 것은 하늘로, 땅에서 온 것은 땅으로, 바다에서 온 것은 바다로 가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할 때도 하나님은 무엇인가를 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침묵하고 계신 것 같지만 침묵 뒤에서 위대한 역사를 행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잘못 계산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늦게 오신 적이 없습니다. 가장 적합한 때에 여러분에게 나타나셔서 구원하십니다.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홍수를 일으키시지도 하지만 물을 빼내시고 땅을 마르게도 하십니다. 여러분 중에 누군가는 어려움을 겪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려움이 언제 끝날지 몰라 절망하고 있는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때가 되면 물러갑니다. 개인적인 위기를 만났을 때 끝이 없이 영원할 것 같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끝은 반드시 있습니다. 위기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고난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을 이루신 후에는 물을 빼시기 시작하십니다. 저는 여러분의 위기 속에 하나님께서 물을 빼시는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위기가 예수의 이름으로 떠나가기를 축원합니다.

3.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을 닫으시는 하나님
 (창세기 8:2)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막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하나님께서는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들”을 열어 땅에 홍수를 가져오셨습니다. 지하에서 물이 지면으로 솟아오르게 하셨고, 하늘 위에서는 하늘의 창을 열어 궁창의 물이 쏟아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는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들을 열어 땅에 홍수를 가져오시게 할 능력이 있으십니다. 하지만 이제 작정한 40 주야가 지나고(7:4), 하나님의 심판 목적(6:17)이 다 이루어지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을 다시금 원래대로 막으셨습니다.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 여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이 물의 근원들을 막히게 역사하신 것입니다.

<소결론>
 우리는 여기서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을 열기도 하시고 막기도 하시는 비의 주관자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을 볼 수 있습니다.



4. 홍수를 물러가게 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8:3)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일백 오십일 후에 감하고” 3절을 보면 물이 점점 물러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썰물 현상처럼 물이 점차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바다로 되돌아갔습니다. 
 “일백 오십 일 후에 감하고” 홍수는 40일간 계속되었습니다.(창세기 7:12) 그리고 이후 그 영향으로 110일 동안은 계속 물이 불어났습니다. 따라서 홍수 150일째 되는 날 물의 수위는 최고에 이르렀습니다.(창세기 7:24) 하지만 150 일째 이후부터는 하나님께서 일으킨 바람으로 인해(창세기 8:1) 급격히 물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노아가 방주 안에 머물렀던 시간을 계산해 보라. 하나님께서 노아를 방주에 들어가게 하시고 방주의 문을 닫으신 후에 40일 동안 비를 내리셨습니다.(16, 17절 참조) 그리고 땅에 물이 불어나서 지면의 최고 높이까지 덮는데 다시 110일이 걸렸으므로 합해서 150일이 소요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기간까지만 계산해 보더라도 150일이 소비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물이 감하기 시작하여 노아가 물이 감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까마귀를 내어 보낸 때는 114일 후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비둘기를 보내 돌아오지 않았던 때까지는 21일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지면에 물이 걷힌 것을 본 것은 다시 29일이 지나서였습니다. 이 날들을 합하면 총 164일 혹은 5개월 14일일 걸린 셈입니다. 그 후에도 노아는 하나님께서 방주의 문을 여시기 전까지 다시 57일을 더 기다렸습니다. 그러므로 노아는 일 년이 조금 넘는 371일 동안을 방주 안에 거하였던 것입니다.



5. 홍수를 물러가게 하시는 방법
 4~5절을 보십시오. (창세기 8:4-5) “칠월 곧 그 달 십 칠 일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물이 점점 감하여 시월 곧 그 달 일일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아라랏산은 원어로 보면 아라랏의 산들입니다. 아라랏은 이란 터키 러시아 국경에 있는 큰 산 줄기입니다. 그 산들 중 한 곳에 방주가 머물렀습니다. (아라랏은 소아시아와 카스피해 사이의 산악지대인 오늘날 아르메니아(Armenia) 지대를 가리킵니다. 노아 방주가 머문 아르메니아 지역은 옛 대륙의 중심지로서 홍수 이후 세계 도처로 새롭게 퍼져나간 인류의 발달과 관련하여 가장 적절한 장소였습니다.)

 물은 천천히 빠진 것이 아니라, 지형의 변동에 의해서 급속도로 빠르게 감소하였습니다.

 어떻게 물이 빠질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물이 물러가게 하기 위하여 지구의 지각을 변동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셨습니다. (시 104:4-9) “바람으로 자기 사자를 삼으시며 화염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 땅의 기초를 두사 영원히 요동치 않게 하셨나이다 옷으로 덮음 같이 땅을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에 섰더니 주의 견책을 인하여 도망하며 주의 우뢰 소리를 인하여 빨리 가서 주의 정하신 처소에 이르렀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노아의 홍수에 대한 것을 과학적으로 기록했다면 책을 몇 십 권 써도 부족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있는 짧은 몇 구절 속에는 놀라운 영감이 있습니다. “산들이 꺼지고 땅들은 솟아올랐습니다.” 창조과학자들은 히말라야 알프스 안데스 산맥들은 모두 젊은 산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산에서 물고기와 조개 등의 화석이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아시아에는 섬들로 된 나라들이 많이 있는데 이것들은 높은 산이 꺼져 봉우리만 남은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내륙지방에 물고기 화석들이 많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노아의 홍수란 역사적 사실만이 이것들의 설명을 가능케 합니다. 여러분, 성경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림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십시오! 과학으로 이것을 다 평가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과학은 미완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나가는 말

 마태복음 8장 24절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가던 중 풍랑을 만났습니다. 제자들은 겁이 나서 잠자고 있는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내가 있는데 왜 두려워하느냐?’란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계시는데 왜 두려워하십니까? 여러분만 망하거나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두려워 마십시오. 놀라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자 놀랍게도 잔잔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람과 파도를 주관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람과 파도를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