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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는 노아 (창세기 6:13-22)

my gospel 2024. 3. 5. 17:32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는 노아 (창세기 6:13-22)


<30>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는 노아
창세기 6:13-22


한근호 목사

 

들어가는 말


 어제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가족들과 짐승들을 구원하시겠다고 언약하시는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창세기 6장 / 개역개정)
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14.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15.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16.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17.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19.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20.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21.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
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가운데 말


1.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는 노아
 22 절 말씀입니다.
 (창세기 6: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노아가 하나님을 명령을 듣고 준행한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① 크게 세 가지였는데, 첫째로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신 양식(樣式)을 따라 방주를 건조하는 일이었습니다.
 (창세기 6:14-16)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② 둘째로 모든 생물을 암수 한방씩을 방주로 맞아들인 것입니다.
 (창세기 6:18-20)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 수 한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③ 셋째로 노아 가족과 생물을 위해 식물(食物)을 비축한 것이었습니다. 
 (창세기 6:21) “너는 먹을 모든 식물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식물이 되리라”



2. 방주를 짓는 노아를 조롱하는 세상 사람들
 자, 그렇다면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노아는 자신의 세 아들을 데리고, 길이 137m, 너비 23m, 높이 14m 가량의 거대한 방주를 건조했습니다. 방주가 거대하다 보니, 방주를 건조하는데 무려 1백 2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더구나 노아는 방주를 바닷가에 건조하지 않고, 내륙에서 건조했습니다. 내륙에서 이상한 모양의 거대한 방주를 건조하고 있는 노아에 대한 소식은 사람들에게 Sensation을 일으켰을 것입니다. “이렇게 큰 배를 도대체 어디에 쓴단 말입니까? 그리고 배는 큰 강이나 바닷가에서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내륙에서 배를 만들다니 노아가 실성을 한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사람들은 노아의 행동에 의구심을 품기고 있지 않았고, 직접 노아에게 묻기도 했을 것입니다. 노아가 이들의 질문에 무엇이라고 대답했겠습니까? 창세기 기사에는 그런 기록이 없으나 노아는 분명히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심판의 메시지 때문에 방주를 건조한다.”라고 밝혔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베드로후서 2장 5절에 보면, (벧후 2:5) “오직 의(義)를 전파하는 노아”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베드로 사도는 “노아가 세상 사람들에게 의를 전파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노아가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에 방주를 짓는 것이고, 이때 구원을 받으려면 반드시 방주를 타야 한다.”라고 외쳤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노아로부터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메시지를 들은, 세상 사람들은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누가복음 17장 27절에서는 (눅 17: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전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노아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 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여전히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만 관심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홍수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방주를 건조하는 노아의 말을 믿지 않고, 오히려 노아를 비웃었습니다. “나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어제도 심판은 없었고, 오늘도 심판은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미래에 있을 심판을 믿을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그것도 홍수로... 혹 반드시 심판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노아 당신에게만 그 같은 사실을 알리셨는가?” 120년의 세월 동안에는 구름 한 점 없는 창창한 날씨가 계속된 날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럴 때면 이들은 흥청만청 파티를 즐기면서, 자신들과 함께 쾌락을 즐기지 않은 채, 비지땀을 흘리며 방주를 만들고 있는 노아를 보면서 “홍수가 언제 임하느냐?”라고 조롱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결국 홍수 심판으로 멸망받고 말았습니다.



<소결론>
 오늘날에 어떤 사람이 정말로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하면, 노아시대와 동일하게 조롱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성도들이 조롱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벧후 3:3-4)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다는 말씀을 전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느냐”라고 조롱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재림”만 그렇습니까? 우리가 만약 “하나님의 천지창조,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 천국과 지옥의 존재, 하나님의 백보좌 심판”에 대해 이야기하면, 세상은 우리를 조롱할 것입니다.
 세상만 우리를 조롱하는 것입니까? 그리스도인들도 조롱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말로는 이런 것들을 인정하는 것 같지만, 실제 삶으로는 이런 진리를 믿지 않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리고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것을 믿고, 그런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면, 그들을 광신도라고 조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이 결코 성취되지 않을 것처럼 살아갑니다. 천국과 지옥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백보좌 심판이 없을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고 성취되어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노아 시대에 하나님의 노아홍수에 대한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중에 아직 성취되지 않은 말씀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때가 되면 성취될 것입니다. 당시에 하나님에 대해서 진심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도 않았던 사람들 위에 틀림없이 심판이 내려졌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않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 하나님의 약속이 말씀을 믿고 붙들고 살아간 사람들에게는 즐거움이 있을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믿은 사람 노아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방주를 건조하려면 사람들의 조롱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광신도라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누가 들어도 상식적이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일을 한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해해 주고 칭찬해 주는 일을 하기는 쉬울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가 방주를 짓는 일은 세상 사람들이 이해해주거나 칭찬해 주는 일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야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노아는 한두 달 혹은 일이 년이 아니라, 무려 120년 동안이나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점점 세월이 지나가면서 친구들도 이웃들도 다 떨어져 나가게 되었을 것입니다.

 노아도 우리와 성정이 같은 동일한 인간인데, 방주를 짓는 120년 동안 많은 회의와 갈등이 일어나지 않았겠습니까?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도 노아는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결국 120년 만에 방주를 건조하는 일을 마쳤습니다.

 그렇다면 노아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히브리서 기자는 (히 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노아 홍수 대심판 두고 “아직 보지 못한 일”이라고 언급하였습니다. 즉 이 말은 노아도 대홍수에 대해 “아직 본 적이 없는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대홍수 심판 같은 것은 결코 전에는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는 전무후무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노아는 하나님으로부터 대홍수 심판에 대한 경고하심을 받았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순종하여 방주를 지었던 것입니다. 전혀 홍수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 120년 동안, 인내하며 방주를 지을 수 있도록 노아를 지탱해 준 것은 바로 하나님의 구두 말씀(the spoken word)이었습니다. 노아가 120년 동안 방조를 건조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요동하지 않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의 상황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노아는 방주를 지으면서 전에는 한 번도 그와 같은 홍수가 세상에 닥쳐온 적이 없었던 상황에서 전 세계를 물에 잠기게 할 대홍수가 닥칠 것을 선포한 것이었습니다. 노아가 만약 그에게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의 확실함을 의심하였더라면, 그 시대의 불신자들의 조롱과 조소에 끝까지 참고 견디지 못했을 것입니다.




<소결론>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 만큼 더 확실한 보증은 없습니다. 성도들을 굳게 지탱하는 것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마음 판에 새겨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마음에 새기게 되면, 우리의 신앙은 전혀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