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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하신 하나님 (창세기 6:17-22)

my gospel 2024. 3. 3. 18:40

 

언약하신 하나님 (창세기 6:17-22)


<29> 언약하신 하나님
창 6:17-22

 

한근호목사


들어가는 말


하나님의 심판
 우리는 지난 몇 시간에 걸쳐서 하나님께서 노아의 대홍수 사건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대홍수를 통해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게 된 주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셨고, 당연히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하나님께 저항했고, 하나님의 피조물이 되는 것을 거부하였습니다. 인류는 세상에 존재케 하신 하나님의 목적들에 저항하고 맞섰습니다. 인류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희망의 미래를 거부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대홍수를 통해 인류를 심판하시기를 결정하신 이유였습니다. (17)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류를 홍수로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홍수로 말미암아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땅에 있는 자”는 “땅 위에 있는 모든 것”곧 사람을 비롯하여 뭍짐승과 날짐승을 가리킵니다.(7절) 결국 하나님의 심판은 전 세계적인 범위에 걸쳐서 일어날 것이었고, 그 심판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성격의 심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세계에 분노하신 나머지 홍수로 그것을 멸하려 하실 것입니다. 



(창세기 6장 / 개역개정)
17.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19.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20.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21.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
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가운데 말


1.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드러난 구원의 역사
 그런데 이러한 대홍수 심판 가운데서 우리는 중차대한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과연 자신의 세상을 끝장내실까?”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지난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짓게 하시는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로 하여금 방주를 짓게 하심으로 구원의 길을 준비하심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심으로 완전히 세상을 끝장내고자 하심이 아니요, 새롭게 시작하시고자 함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에서는 이러한 의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노아와 노아의 가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6: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로 하여금 방주에 들어감으로 홍수 심판을 피해 생명을 보존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2) 각종 동물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6:19-20)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 수 한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모든 종류의 생물을 암수 한 쌍씩을” 방주로 이끌어 들여 그들의 생명을 또한 보전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노아는 다른 짐승들이 홍수에 빠져 죽지 않도록 피난처를 마련해 주어야 했습니다.



3) 식량을 비축하게 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6:21) “너는 먹을 모든 식물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식물이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짐승들이 굶어 죽지 아니하도록 먹을 것을 마련해 주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방주 안에 있기로 정해진 기간 동안 먹을 것을 그 배에 실어야만 했습니다.



<소결론>
 우리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의도가 심판이 아니요, 구원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2. 언약하신 하나님
 자, 그렇다면 노아가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따르면, 노아는 과연 전 세계적으로 임한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서도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정말로 그것이 확실합니까?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확실하게 안전을 보장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안전 보장은 언약으로 나타났습니다. (창세기 6:18a)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언약입니다. 성경에서 “언약”이란 용어가 최초로 사용된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여기서 “언약”(베리트)은 “끊다, 자르다, 쪼개다”란 뜻의 “바라”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히브리말로 언약을 맺는다는 말과 쪼갠다는 말은 같은 말입니다.  곧 당사자 간의 엄숙한 계약의 표시로 짐승을 잡아 둘로 쪼갠 후 그 사이를 지나면서 맹세를 하던 고대의 계약 관습을 반영하고 있는 말입니다. 고대에 중동에서 두 사람이 언약을 체결할 때에는 짐승을 잡아 둘로 쪼갠 후에 두 사람이 그 쪼개진 짐승사이로 지나갑니다. 이는 언약을 확실히 지키겠다는 약속이었으며, 만약 어느 한 사람이 언약을 어길 시에는 언약을 어긴 사람을 쪼개진 짐승처럼 쪼개도 된다는 의미입니다. 두 사람이 지나가는 것은 보통 쌍무 언약(雙務言約) 곧 계약 당사자가 서로 의무를 부담하는 언약입니다. 결국 언약은 계약 당사자는 계약 불이행 시 희생된 짐승처럼 죽음을 담보하고 있는 셈입니다.

 창세기 15장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15:9) “삼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하여” (15:10)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건 것을 마주 대하여 놓게” 하십니다. 이제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그 사이를 지나가면 언약이 공식적으로 체결되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렀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기진맥진했는지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이 깊이 잠든 사이에 어두운 침체의 그늘이 그를 내리 덮쳤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15:17-18)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그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 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불로 응답하셨습니다. 이 장면은 그 유명한 횃불 언약 체결 장면입니다. 언약(言約) 체결은 아브라함이 준비한 희생 제물의 쪼개진 중간 사이로 하나님의 가견적(可見的) 임재의 상징물인 횃불이 지나감으로써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서의 장면은 당시 풍습과 한 가지 본질적인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함께 제물 사이를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불만 지나가셨다는 점입니다. 이는 하나님과 아브람 사이에 맺은 언약이 하나님 홀로 의무를 지는 편무 언약(片務言約)임을 보여줍니다. 즉 하나님은 아브람의 신실성에 관계없이 자신이 아브람과 맺으신 약속을 신실하게 주도적으로 이루어 가실 것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 언약은 전적인 은혜이며 주께만 의존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단지 이 일의 성취를 위해 믿음으로 기대하며 기도할 뿐 다른 아무런 노력도 필요치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단지 신뢰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일방적으로 이루어 주시는 것이지, 아브라함이 이에 상응하여 하나님께 똑같이 충성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부패하고 변하기 쉬운 인간은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서 계약자의 상대로 설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노아와 언약을 세우시는 장면도 동일한 의미를 보여줍니다. (창세기 6:18a)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내 언약”이라 함은 하나님께서 언약의 주체가 되심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지 않으신 적인 단 한 번도 없으십니다. (딤후 3: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바울 사도의 고백입니다. 언약하시고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이 약속을 지키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아들들과 아내와 자부들도 구원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지키셨습니다. 약속의 성취는 노아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언약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노아의 소망이었고, 또한 우리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대단한 헌신과 결단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의 구원은 바로 그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 준수 때문에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망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있는 것입니다.

 (행 16: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우리가 주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언약하시고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이 약속을 지키실 것입니다. 노아만 구원하지 않고 가족들을 모두 구원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정도 모두 구원해주실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역시 노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이 세상의 존립은 노아의 덕분이었고, 노아로 인하여 만물이 존재하며, 또한 죄로 인하여 인류가 완전히 멸망되지 않도록 보존합니다. 노아를 통하여 거룩한 씨가 살아남게 되고, 만물이 헛된 신음에서 구원함을 얻은 것입니다. 노아는 자기가 다스려야 할 자들을 구원했으며,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