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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한탄 (창세기 6:5-8)

my gospel 2024. 3. 3. 18:21

 

타락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한탄 (창세기 6:5-8)


<26> 타락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한탄
창세기 6:5-8


들어가는 말

 지난 말씀(1-4)에서 초기 경건했던 셋의 후손들까지 점차 가인 후예들의 죄악과 연합하게 됨으로써 가인의 길과 동일한 길을 걸어가게 되었음을 나누었습니다.



(창세기 6장 / 개역개정)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가운데 말

1. 세상을 바라보시는 하나님
 (창세기 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 여기서 “죄악”이란 단순한 허물 정도가 아닌, 인간의 전존재가 하나님의 뜻과 완전히 어긋나 있는 죄를 가리킵니다. 당시의 인간의 마음과 모든 언행은 하나같이 하나님을 떠나 회복이 불가능한 죄악 가운데 있었습니다. “관영했다”는 말은 “극히 많다”는 뜻으로서, 세상의 타락상이 어느 한 지역의 지협적인 문제가 아니라, 세상 모든 구석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당시 인간의 부패상은 내적으로는 내면 깊은 곳까지 침투해 있었고, 지역적으로는 온 세상에 걸쳐서 일어났습니다.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이는 단지 우리 행실이 죄의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죄악의 뿌리가 있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죄가 인간의 마음속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로마서에서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10)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로부터 종교 개혁자 칼빈(Calvin)은 인간의 “전적 타락설” 교리를 세웠습니다. 이는 인간의 본성이 전적으로 타락했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 시대 당시 사람들의 타락상을 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외적으로 나타난 죄의 열매뿐만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죄의 뿌리까지도 보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지난 1-4절 말씀에서 나누었던 인간들의 죄악들을 하나님께서 보셨다는 말씀입니다.



<소결론>
 오늘 이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인류 역사에서 멀리 떨어져 가신 분이 아니라, 매우 가까이에 계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의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인류 역사에 깊이 있게 관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심지어 죄를 짓고 타락한 인류의 역사일지언정, 하나님께서는 항상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늘 동일함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대와 우리 각 사람을 향해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고 계십니다. 우리를 보시는 하나님의 눈길이 우리를 떠나 보신 적이 없으십니다. 결코 우리를 외면하신 적이 한 번도 없으십니다.



2. 한탄하시고 근심하시는 하나님
 홍수가 있기 전의 사람들은 완전히 타락하고, 더럽혀지고, 비천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인간은 의의 길로 돌이키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거절하였기 때문에, 그들에게서는 아무런 소망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인간들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한탄하시고 근심하셨습니다.” (창세기 6: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한탄하사”란 “헐뜩거리다, 신음하다, 숨이 차다”는 뜻의 히브리어 “나함”에서 유래된 말로써, 자신 또는 타인의 아픈 현실로 인해 고통 가운데서 깊은 한숨을 내쉬며 비통해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근심하시고”란 “심령이 찢어지다, 찢어지는 마음의 고통으로 짓눌리다”란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행해진 결과를 보시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비통해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 가운데 있는 인간을 보시고 마음에 극심한 심적인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으로 황폐케 되어버린 인간 영혼의 비극적 현실을 바라보시고 마음이 찢어질 듯 한 마음의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한편 이상에서 제시된 성경의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의 후회나 실패, 또는 경륜의 변경 등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지 전능자 하나님에겐 인간과 같은 후회나 변덕이 결코 있을 수 없다(민 23'19 ;삼상 15 29). 이 표현은 다만 인간의 타락이나 배반, 또는 불순종 등에 대해 하나님께서 가지시는 감정을 인간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의인화한 표현으로서, 곧 신인동형동성적(神人同形同性的) 표현이다. 여기서 “근심하사”라는 말은 영어로 “repent(후회하다)”라는 의미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람지으셨음을 후회하신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후회하실 일을 행하실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하나님의 후회는 그의 성품에 있어서나 혹은 그의 목적에 있어서나 변화할 수 있는 가변성이 전제된 것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과 관련하여 언급된 후회는 사람의 언어로는 완전무결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적당한 표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람의 언어로 묘사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소결론>
 부모님들은 자식들의 탈선을 보면서 누구보다도 마음 아파하십니다. 마음을 도려내는 것과 같은 아픔을 겪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하여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떠나게 될 때, 마음이 찢어지는 아픔을 경험하십니다. 우리는 죄악된 우리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애절하게 아파하시는지를 정말로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우리의 삶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3. 심판을 선포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인간 속에서 극도로 악이 성행함을 보신 후에야 심판을 선포하셨습니다. (창세기 6:7)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에게 내린 심판으로 인한 완전한 말살은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말해 줄 뿐만 아니라, 죄가 지니고 있는 것이 얼마나 더러운가를 말해 주기도 합니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이 얼마나 죄를 미워하시는가 하는 것도 우리에게 시사해 줍니다. 성경은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합니다. 죄에 대한 이 원리는 결코 변하지 않는 불변의 진리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죄 위에 심판을 내리실 때에, 이 심판으로부터 불신자들이 모면할 수 있는 적절한 피난처는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이에 관한 진리는 요한계시록 6장에 증거되어 있다. 이 기록은 하나님의 심판이 지상에 남아 있는 사람들 위에 쏟아질 대환난 기간 때에 일어날 일을 묘사한 것이다. 그중 15-17 절 말씀을 살펴보자.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파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소결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죄를 심판하십니다. 사람들 중에 하나님께서 사랑이시기 때문에 죄인을 심판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착각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심판에 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4.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
 (창세기 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한탄과 심판의 암울한 상황 가운데서 한줄기 소망과 회복의 빛이 반짝이는 구절입니다. 이곳이 성경에서 “은혜”라는 말이 처음으로 발견되는 곳입니다. “은혜”란 “호의”, “용납”, “자비”, “사랑”, “보호” 등의 의미를 지닌 말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죄인들에 대한 값없이 베푸신 호의(favor)를 말합니다. 이 은혜는 댓가 없이 공짜로 거저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세상을 심판하시는 중에도 특별히 노아를 구별해 내사 그에게 사랑과 은총을 흠뻑 쏟아부어주셨습니다. 은혜는 심판의 한가운데에서 드러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에베소서 2:8, 9에서도 증거 되어 있습니다. (엡 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바울 사도는 디도서에서는 (딛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움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쫓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이 죄에 빠진 이래로 언제나 쉬지 않고 항상 작용해 왔습니다. 



<소결론>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께서 신자들을 위해 행하시고 또 이루신 모든 일에 있어서도 신자들에게 증거 되어 있다. 마치 노아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 받아들여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신자들도 그들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신자들이 그 주변에 악하고 패역한 자들과 핍박과 악의 영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의해 넘어지지 않고 굳게 서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증거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