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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가 된 사람들 (창세기 6:1-4)

my gospel 2024. 2. 24. 18:38

 

육체가 된 사람들 (창세기 6:1-4)


<25> 육체가 된 사람들
창세기 6:1-4

한근호목사


들어가는 말


 창세기 5장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족속인 셋의 계보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 계보는 노아와 그의 아들 대(代)에서 끝나고 있습니다. (5:32) “노아가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노아와 그의 세 아들은 노아의 대홍수의 주인공들이기에 매우 중요한 인물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인류사에 있어 대 변혁의 사건이었던 노아 대홍수가 일어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을 다루는 도입부입니다. 



(창세기 6장 / 개역개정)
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4.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가운데 말

1. 세상적인 아름다움에 취한 사람들
 (창세기 6:1-2)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인류사의 초기에는 사람들이 장수(長壽)했을 뿐 아니라, 많은 자녀들을 가졌기 때문에 분명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구 증가는 창세기 1장에서 (1:28)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였습니다. 

 (창세기 6:2) “하나님의 아들들‥‥사람의 딸들”은 경건한 셋 계열의 후손과 불경건한 가인의 후손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창세기 4 장에서 하나님께 반역한 가인의 계열의 번성을 살펴보았습니다. 가인의 후손은 그들의 수가 점점 더 불어나고 또 발전해 감에 따라 악한 길로 계속 나아갔습니다. 창세기 5장에서 하나님과 동행한 셋의 계열의 번성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6장에 와서는 셋의 계열 안에 비극적인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셋의 후손들이 더 이상 하나님을 경외하는 기준을 지속하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영적 것에 무관심하게 되었습니다. 영적인 것에 냉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에게 일어난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창세기 6: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창세기 6장에서 슬픈 일은 이 6장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은 여자의 아름다움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아름다움”이란 인격적인 아름다움이나 종교적 경건성과는 전혀 무관한 육체적 미모, 향락적 채취 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여자들을 보고서 그 여자가 하나님과 영적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아름다움의 포로가 되어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취함으로써 영적인 것은 내던져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함으로 섞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요일 2:16)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을 쫓아 배우자를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신의 결혼할 여인을 찾을 때에, 도덕적인 성품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단지 육적인 감각의 쾌락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보기에 아름답게 느껴지는 여자들을 아내로 삼았습니다.



2. 육체가 된 사람들
 셋의 후손들은 초기에는 가인의 후손들과는 서로 너무 다른 특징을 지녔기 때문에 여러 세기 동안 섞이지 않고 독립된 채로 살았습니다. 셋의 후손들은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가인의 후손과 분리되어 사는 일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6장에 와서는 셋의 후손들이 가인들의 후손들과 섞이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이 두 계열 사이의 뚜렷했던 차이가 사라져 버리고 만 것이다. 성경에서는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창세기 6: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나의 신”이라는 말은 성령을 언급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때 성령이 항상 사람과 함께 하지 않을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아담의 타락이 있은 이래로 모든 인간을 죄인으로 태어났으나, 창세기 6:3의 말씀이 있기까지는 모든 인간을 “육체(flesh)”로 언급한 적은 없었습니다. 여기서 “육체(flesh)”는 단순히 “몸”(body)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곧 죄의 오염으로 말미암아 심히 타락한 인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육체(flesh)”라는 말은 완전히 타락하고 더럽혀진 인간의 죄성을 언급할 때 성정에서 자주 사용되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하여 이미 침몰해 버린 것과 같았습니다. 셋의 후손들은 영광스러운 출발을 하였을지라도 종국에는 저열한 수준까지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 두 계열의 섞임이 가인의 계열을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림으로써 일어난 것이 아니라, 셋의 계열이 가인의 계열로 낮추어지면서 일어난 것임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일은 항상 타협의 결과이기도 하다. 셋의 후손들은 가인의 후손들처럼 악에 물들어 더럽혀지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완전히 죄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들 스스로도 죄의 삶을 버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 말은 장차 임할 홍수 대심판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이 두 계열이 서로 섞인 것은 엄한 심판이 불가피할 정도로 그들이 매우 악하였기 때문에 그 악의 결과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전 세계를 홍수를 통하여 심판하실 것을 결정하신 것이다.

 (창세기 6:4)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네피림”은 히브리어는 “naphal”로서 “넘어뜨리다”라는 의미를 지니며, 특히 “습격하다 혹은 공격하다” 등의 의미도 지닌 말입니다. 그래서 이 “네피림”은 다른 사람들을 넘어뜨리는 사람 혹은 공격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이런 사람들을 강도나 악당으로 부르기도 한다. 즉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는 데 무자비하고, 포악하며, 무법자로서 떠돌아다니는 사람들로 보인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네피림”을 “타락한 자들”로 “압제자, 난폭군, 훼방자”를 말씀합니다.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여기서 “용사”는 “강하고 힘센 자”를 뜻합니다. 그들이 무(武)의 힘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들과의 연합으로 태어난 소생들은 사악함의 영웅들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홍수 전 타락과 방종과 전쟁과 압제 및 약탈의 시대에 그 이름을 떨친 전쟁 영웅이나 부호(富奈) 또는 귀족을 뜻합니다. 마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말세에 세상에서 오히려 사악한 자들이 득세하고 의인들이 멸시를 당하게 될 것을 나타내듯이, 노아의 시대에도 악한 자들이 큰 명성을 얻고 의인들은 멸시를 당하였음이 분명합니다.



<소결론>
 우리가 이 두 계열의 혼합으로부터 얻게 되는 교훈이 있다면, 신자들에게 있어서 세상과의 분리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라는 것과, 또 세상과의 타협은 반드시 파멸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분리되어 살 것을 명령하신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아야 합니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이 하나님의 계명을 명심하지 않아 그대로 살지 않을 때, 그로 인한 결과는 매우 소름 끼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불신자들과 섞여 살게 되면, 반드시 타락의 길로 치닫게 될 것입니다. 물론 신자들은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불신자들의 가치관을 채택한다면 화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신자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원한다면 세상과 분리된 삶을 사는 것이 필수적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후서 6:14-16에서 말씀합니다. (고후 6:14-16)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또 야고보서 4:4 은 세상과 벗이 되는 사람은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고 말씀합니다. (약 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나가는 말

 성도라고 하더라도 죄악 된 자와 교류한다면 죄에 오염되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죄는 일시적으로는 인간에게 쾌락과 평안을 주며, 그로 인해 작은 죄를 허용하면 그 마음은 곧 큰 죄조차 용납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죄는 그 모양이라도 버리며 날마다 자신을 성찰하여 작은 죄의 모습이라도 가지고 있지 않을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도는 이 세상이 죄악 됨에 동화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성결하기에 힘쓰며 더 나아가 죄악 된 상황을 척결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