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 아담의 후손들
창세기 5:1-20 (1-5절을 중심으로)
한근호 목사
들어가는 말
지난 두 시간에 걸쳐서 우리는 가인의 후손들과 셋의 후손들의 일부를 살펴보았습니다. 창세기 4장 17-24절까지는 가인의 후손들 중 일부를 열거하여 기록하였습니다. 창세기 4장 25-26절 말씀은 셋에 후손들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역사에서 문명의 두 계통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인의 계통이 경건치 않은 것이었던 반면에, 셋의 계통은 경건한 것이었습니다. 창세기 3:l5에서 기록된 바와 같이 여자의 후손에 관련된 약속이 실행된 쪽은 가인의 계열이 아니라, 셋의 계열이었습니다. 크게 보자면 창세기 4 장은 가인을 통한 아담의 후손을 기록하였고, 반면에 창세기 5장은 셋을 통한 아담의 후손을 기록하였습니다. 오늘 살펴볼 말씀은 셋을 통한 아담의 후손에 대한 말씀입니다.
(창세기 5장 / 개역개정)
1.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2.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3.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4.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5.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6.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7.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8. 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9.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10. 게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11. 그는 구백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12. 게난은 칠십 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13. 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14. 그는 구백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15. 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16. 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7. 그는 팔백구십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18. 야렛은 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19. 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0. 그는 구백육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21.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3.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25. 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26. 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7. 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28. 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29.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30. 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31. 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살고 죽었더라
32.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가운데 말
1.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사람들
(창세기 5: 1-3)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아담이 일백 삼십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1절 말씀에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창세기 1장 26-27절 말씀을 다시 언급한 것입니다. (창 1:26-27)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 창조의 면류관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로 인간을 창조하셨으며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복을 주셨고, 인간을 사람이라 이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름을 지어주는 행위 속에서, 우리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애정과 주권(主權)을 새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5장 3절 말씀입니다. ( 창세기 5: 3) “아담이 일백 삼십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3절에서는 아담이 아들을 낳았는데,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과는 변화된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본래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거룩하고 고상하게 지음 받았습니다. 하지만 타락으로 말미암아 아담은 하나님의 본래 형상에 속한 영광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그의 죄로 말미암아 더럽혀지고 만 것입니다. 아담의 죄는 원죄로 인류 전체 가운데 흐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셋이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 “아담의 형상”이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비록 셋이 나중에 은혜의 성령에 의해서 새롭게 되었을지라도, 그 역시 죄인으로 태어난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소결론>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이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새로운 영적 탄생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 3:5, 6)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게 됩니다.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면, 그는 영적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2. 죽음의 세력 아래 있는 사람들
( 창세기 5: 4-5 절) "아담이 셋을 낳은 후 팔백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 삼십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첫 사람 아담은 지금의 사람의 수명에 비교하면 대단히 오랜 수명을 누렸습니다. 5장의 족보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수 백 년을 살았습니다. 노아홍수 사건 이후에 인간의 수명이 오늘날과 같이 단축이 됩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궁창이 있었습니다. 궁창은 하늘에 있는 물 층입니다. 그러므로 노아 홍수 이전과 이후에 이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우주의 상태는 지금과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이 궁창의 존재로 말미암아, 태양의 해로운 자외선이 차단되었고, 기후가 인간이 장수하기에 적합했을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노아 대홍수가 일어나게 되는데, 그때 궁창에서 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이때 궁창이 사라졌으며, 그 후로 급격히 수명이 짧아지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본문을 읽으면서 성경의 인물들은 무척 오래 살았다는 데 놀랐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본문의 핵심은 다른 데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장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 세기 5: 5) “죽었더라”는 말씀에 있습니다. 아무리 오래 산 사람들도 다 죽었다는 말씀이 바로 오늘 성경 본문의 관심사이고 초점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善惡果)를 따먹는 범죄를 저지른 아담에게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3:19) “흙으로 지음을 받았으니 흙으로 돌아가리라”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선언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사망이 기록된 일은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창세기 5장은 성경에서 가장 슬픈 장들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죽음의 비극은 아담 한 사람에게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5장의 족보를 읽어 가다보면 항상 반복되는 말씀이 있는데, “죽었더라”는 말씀입니다. 5장의 족보를 읽다 보면 마치 공동묘지에서 묘비명에 출생한 날짜와 사망한 날짜가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는 것 같습니다. 아담을 비롯하여 매 인물의 생애 끝에 "죽었더라"란 말이 반복 사용된 것은, 인간 타락 이후 모든 인간이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죽음은 모든 인간들에게 어김없이 찾아오는 필연적인 것입니다. 인류의 모두 사람들은 다 죽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젊음 사람이건, 늙은 사람이건, 부자건 가난한 사람이건, 상관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죽음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세계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는데, “인생의 모든 길은 죽음으로 통한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5장 l2절에서는 이 일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롬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아담의 죄로 죽음이 찾아왔고, 이 죽음은 아담 한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찾아왔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3. 새 가계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렇다면 5장의 족보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인간들에게 절망감만을 안겨주는 것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자녀를 낳았으며”라는 말씀은, 개인은 죽지만 출생을 통해 아담의 가계가 계속 계승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셋의 가계가 계속 계승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죽음은 단순히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낳았고”라는 단어를 통해 선명하게 시사되듯 생명의 계승으로 극복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본장에서 “죽었더라”란 말이 8번 언급된 반면, “낳았고”란 말이 20번이나 언급된 사실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죽음에 방치하지 않으시고 오직 은혜로서 그 생명을 붙들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족보는 결코 허무한 죽음으로 끝맺지 않습니다. 아담의 족보는 대단히 중요한 또 하나의 족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3장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족보의 주인이 되시자, 족보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창세기 5 장의 족보는 “죽었더라”가 반복되지만, 마태복음의 족보는 죽음이라는 단어는 쓰이지 않고 “낳고”의 연속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 중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었던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신 구세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요 11:25-26)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도 죽음을 이기고 부활의 생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다시금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인간은 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국 사망이 패배할 것임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실 때 죽음을 정복하셨지만, 완성은 재림 때에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고전 l5: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멸망받을 마지막 원수가 바로 사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자들은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나가는 말
<기도로 나가기>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주이며, 부활의 주님이심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더 이상 우리로 죽음에 묶여 무서워 종노릇 하는 자가 아니라, 생명과 부활의 주님 안에서 날마다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