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가인의 문명
창세기 4:16-24
한근호 목사
들어가는 말
어제 말씀에서는 아벨을 죽인 가인이 하나님의 면전을 떠나 에덴 동쪽에 있는 놋 땅에 거하게 된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말씀은 가인과 가인의 후손들이 놋 땅에서 거하면서 일어난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4장 / 개역개정)
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10.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13.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16.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17.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18. 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19.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20.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21.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22.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23.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24.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25.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가운데 말
1. 도시문명을 이룬 가인
(창세기 4:17) “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
가인은 첫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은 “에녹”이었습니다. 이 이름을 창세기 5:18에서 언급되어 있는 에녹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창세가 5장에 등장하는 에녹은 (창세기 5:22) “하나님과 동행”하였던 의인이었습니다.
가인은 놋 땅에 도착해서 성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그 성 이름을 아들의 이름을 따서 “에녹” “에녹”이라고 지었는데, 이 “에녹”이라는 도시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도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고대 시대의 성은 아마 몇 채의 집으로 이루어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집 주위에는 말뚝으로 세워진 방파제나 요새와 같이 벽이 에워싸고 있었을 것입니다.
성 그 자체가 반드시 악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미래에 새 예루살렘 성에서 성도들은 영원히 거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이 성을 쌓기 시작한 동기는 악한 의도가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가인은 육신의 정욕을 만족시키는 삶을 위해서 성을 쌓았던 것입니다. 가인이 하나님의 저주 명령(창세기 4: 10-12절)에도 불구하고 성을 쌓아 정착하려 했다는 사실은 그의 교만과 거역의 태도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가인이 하나님께 거역함으로 성을 쌓았던 것처럼, 후에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을 목적으로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따라서 가인의 도성은 인간 교만과 허영의 상징인 바벨탑의 전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참조 창세기 11:1-9)
2. 경건치 않은 후손들
(창세기 4: 18) “에녹이 이랏을 낳았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았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았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가인이 에녹을 낳고, 에녹이 이랏을 낳았습니다. 이름은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합니다. “이랏”은 “증거하다, 나타낸다, 과시한다”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좋은 의미가 아니고 자기 자신을 과시한다는 뜻입니다. “므후야엘”은 본래 “하나님 때문에 맞았다, 깨졌다”라는 뜻입니다. 얼른 들으면 신앙 고백 같지만 실은 하나님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하게 되었다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적대감이 담겨 있는 말입니다. “므드사엘”은 두 단어가 결합한 것인데 “므드”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사엘”은 “스올”, 즉 “지옥”이라는 단어의 어근에서 나왔습니다. “므드사엘”은 “지옥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자녀의 이름을 이렇게 지은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반항과 적의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라멕”은 “나는 강하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가인 시대의 이름만 보아도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교만과 하나님에 대한 적의를 알 수 있습니다.
3. 타락한 결혼
(창세기 4: 19) “라멕이 두 아내를 취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며”
라멕은 두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라멕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부일처의 신성한 결혼 제도를 육신의 안목과 정욕으로서 파괴시킨 최초의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 시 한 남자를 위해 한 여자를 돕는 배필로 짝지어 주셨습니다.(창세기 2:18-25) 따라서 일부일처(一夫一妻)의 결혼 제도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결혼에 관하여 이렇게 언급하셨습니다. (마 19:4-6)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 할지니라” 그러나 라멕은 결혼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라멕은 자기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라멕은 육신의 정욕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정하여준 결혼 관계를 파기하고 말았습니다. 라멕 이후 인간은 자신의 이기적 욕망과 정욕을 좇아 일부다처(一夫多妻)의 길로 접어들고 말았습니다.
라멕의 아내들의 이름 또한 의미심장합니다. 그 아내들의 이름을 라멕이 이 여인들에게 깊이 빠졌던 이유를 가리켜 줍니다. “아다”라는 이름은 “장식품, 아름다움”이라는 의미이고, “씰라”라는 이름은 “그늘, 피난처”라는 의미입니다. 라멕의 아내들은 매우 아름답고 매력적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라멕으로 하여금 그들을 아내로 삼고자 하는 충동을 유발했을 것입니다.
4. 타락한 문명을 이룩한 사람들
(창세기 4: 20-22)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하여 육축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그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이었더라”
“야발”은 “시내, 강, 여행자”라는 뜻으로 물과 목초지를 좇아 끊임없이 여행하는 유목인으로서의 일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야발”은 양 떼를 방목하며 사육하는 기술과 방법을 개발하고 터득하여 후손들에게 전래시킨 유목민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유발”은 “수양의 뿔”이라는 뜻과 연관이 있는데, 이는 “악기를 연주하는 자”란 뜻입니다. “유발”은 “수금과 통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수금”은 현악기를 가리키고, “퉁소”는 관악기를 가리킵니다. “두발가인”은 “쇠를 벼리다”란 뜻으로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였습니다. 두발가인은 금속으로 각양 날 선 연장을 만드는 대장장이의 조상이었습니다. 두발가인은 금속 기술의 선구자로서, 농기구를 비롯하여 전쟁도구 등을 발명한 자였습니다.
<소결론>
가인 이하 7대의 족보와 그들의 생애가 간략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도시를 건설하며, 목축을 발전시키고, 악기를 발명하며, 무기를 만드는 등 활발한 문명의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인간이 직업을 갖고 문화를 발달시키고 문명을 이루어 나가는 것은 조금도 잘못이 아닙니다. 문명을 발달시키는 것은 건설적인 일입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도 인간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사를 계발해서 높은 문명과 문화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을 떠나서 문명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여호와 앞을 떠난 가인의 후손들의 문명은 인간을 위한 세속적 문명일 뿐 결코 여호와를 위한 문명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그들의 삶에서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크게 강조되었습니다. 그들은 교만과 타락 및 방종의 문명이었을 따름이었습니다.
5. 죽음의 문명
가인 문명의 죄악성은 마침내 라멕의 살인에서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어떤 죄악도 서슴지 않습니다.
(창세기 4: 23-24)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 칠배이리로다 하였더라”
흔히 “검(劒)의 노래”로 알려진 라멕의 복수의 노래입니다. 가인의 대표적인 후예인 라멕이 두발가인이 만든 칼을 손에 쥐고 오만한 마음으로 부르고 있는 이 노래 속에서 우리는 타락한 인간 심성으로부터 풍겨 나오는 살인과 폭력의 악취를 짙게 느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라멕은 누구든지 자신에게 조그마한 부상이라도 입히는 자가 있다면, 어른이든 아이든 무론하고 가차 없이 죽이고 말 것이라고 야수적인 잔학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라멕은 전혀 죄의식을 갖지 않은 가인 후예들의 타락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라멕은 여기서 자신의 살인 행위가 정당방위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라멕은 가인이 무방비 상태에 있는 아벨을 죽였음에도 하나님으로부터 보호를 받았기에 자신은 더욱더 하나님으로부터 보호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라멕은 사람을 죽이고도 자신을 해치는 자는 벌이 칠십칠 배라고 했습니다.
나가는 말
오늘 말씀에서 가인의 후손들이 만든 문명은 생명을 파괴하고 죽음을 양산하는 문명이었습니다. 가인의 후손들의 문명은 결코 우리에게 행복을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현대의 첨단 문명이 반드시 인간을 행복하게 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세상 문명은 우리에게 생명을 약속하지만 결국 죽음만을 안겨 줄 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거역한 문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가운데 가인의 후예들이 양산해 내는 죽음의 문명이 가득함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인본주의와 물질주의와 쾌락주의가 판치는 세상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세상문화, 죽음의 문화를 그대로 따라간다는 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소극적인 차원에서 이러한 세상의 문화를 거부해야 할 것입니다. 적극적인 차원에서는 사람들을 살리는 생명의 문화, 하나님님을 영화롭게 하는 거룩한 문화를 창출하여야 할 것입니다.
<기도로 나가기>
하나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로, 이 세상 가운데 존재하는 사단의 문화, 어둠의 문화를 분별하는 지혜가 있게 하옵소서! 우리로 세상의 문화를 거절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에게 하나님의 창조성을 회복하여 주셔서, 하나님의 거룩을 드러내며, 세상 가운데 생명으로 충만케 할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만들어 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