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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떠나가는 가인 (창세기 4:9-16)

my gospel 2024. 2. 20. 12:12

 

하나님을 떠나가는 가인 (창세기 4:9-16)


<20> 하나님을 떠나가는 가인

창세기 4:9-16

한근호 목사

들어가는 말

지난 말씀에서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살인하는 사건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범죄한 가인을 심문하시고, 선고하시고, 추방하시는 장면입니다.



(창세기 4장 / 개역개정)
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10.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13.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16.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17.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18. 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19.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20.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21.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22.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23.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24.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25.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가운데 말

1. 심문하시는 하나님(창세기 4:9-10절)
(창세기 4: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창세기 4:9 a)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질문에 양심에 가책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 질문으로 인해 가인은 분명 자신이 지금 거룩하신 하나님으로부터 공의로운 심문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었습니다. 이제 가인은 하나님께 죄를 자백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습니다.
 
 가인은 하나님께 (창세기 4: 9b)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 아벨을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대꾸했습니다. 가인은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마귀의 속성을 따라 뻔뻔스럽게 거짓말합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마귀가 “거짓의 아비”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요 8 :44) “ ” 가인은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기는커녕 오히려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파렴치하게도 자신의 죄악을 전혀 개의치 않는 듯이 대답하고 있습니다. 가인은 ① 형제 보호와 형제 우애에 대한 인간적 도리를 거부했고, ② 하나님을 향한 존경심과 그분 앞에서의 겸손과 진실을 망각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죄의 세력(사단)은 하나님과 인간 간의 수직적 관계와 인간 상호 간의 수평적 관계를 철저히 파괴시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죄를 자백할 기회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가인은 그의 죄를 자백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가인이 직접적으로 그의 죄와 대면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4: 10)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이제 가인에게는 피할 곳이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비록 가인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죄를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하였는지는 모르나, 이제 죄를 숨기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하게 되었음이 명백히 드러난 것입니다.



<소결론>
우리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은 모든 일을 아시는 전지 하신 하나님이심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 한 가인의 행위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꿰뚫어 보고 계셨습니다. (시 139:1-4)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앉고 일어섬 뿐 아니라 그의 생각까지도 정확히 인지하고 계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그분 앞에서 변명이나 회피보다 모든 사실을 숨김없이 아뢰며, 통회하는 것이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최선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진술이 의미하는 말씀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더욱 자세히 증거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민 35:33, 34) “너희는 거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피는 땅을 더럽히나니 피 흘림을 받은 땅은 이를 흘리게 한 자의 피가 아니면 속할 수 없느니라. 너희는 너희 거하는 땅 곧 나의 거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 여호와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함이니라” 땅이 피 흘림으로 말미암아 더럽혀졌을 때, 다시 깨끗하게 되기 위한 유일한 길은 그 피 흘리게 한 장본인의 생명을 취하는 길 뿐이었습니다. 이것은 피 흘리게 한 사람을 죽여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가인이 아벨을 살해할 당시에는 아직 사형에 관한 하나님의 형법이 주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4 장에 기록된 바와 같이 가인을 다른 방법으로 다스리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선고-가인의 저주(창세기 4: 11-12절)
(창세기 4: 11-12)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일찍이,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였을 때, 저주가 뱀과 땅에게 내렸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직접적으로 저주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처음으로 저주가 한 사람, 가인에게 내린 것입니다. 죄를 짓고도 회개할 줄 모르는 가인에게 하나님의 형벌이 내려집니다. 땅이 가인을 적대하는 일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땅이 가인에게 그 효력을 주지 않을 것과 또한 그로 인하여 가인이 땅에서 오랫동안 한 곳에서 거주하는 일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 포함됩니다. 그래서 가인은 생계를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됨으로 말미암아 땅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가인은 도망자이자 방랑자가 되어 이리저리 헤매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4: 12) “유리하는 자”는 “떠돌아다니는 방랑자”라는 의미입니다. 가인은 땅이 그에게 그 소산을 내지 않기 때문만이 아니라, 고뇌하는 양심의 신음소리로 인한 아픔 때문으로도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니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3. 회개를 거절하는 가인( 창세기 4: 13-14)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저주를 선포하신 후에, 가인은 하나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13-14)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 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가인의 이 말은 회개와 자복의 말이 아니라 탄식과 불만의 말이었습니다. 가인은 자신의 죄 자체의 악독함에 대해 회개하는 기색이 전혀 없고, 단지 죄로 인한 정벌이 너무 무겁다고 말했을 뿐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이 그에게 이러한 무거운 징벌을 가하시는 것이 부당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가인은 형벌의 중함을 탄식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저지른 죄악의 중함을 회개했어야 옳았습니다. 그럼에도 가인은 조금도 회개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손길을 의뢰치 않는 악인의 절규를 들을 수 있습니다.


4.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 창세기 4: 15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얼마나 큰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창세기 4: 15절 )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하나님은 가인에게 벌을 내리셨지만, 가인을 포기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가인이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특별한 표를 주어서 아무도 그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아직도 가인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와 애정과 보호가 끝나지 않았다는 하나님의 은총의 선언입니다. 그러므로 가인이 받은 표는 사랑의 표시이고 은혜의 표시입니다.



<소결론>
징벌 뒤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다면, 우리가 지은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데 그리 힘들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에 대하여 예레미야는 이렇게 선언하였습니다. (애 3:22-23)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5. 하나님의 떠나가는 가인( 창세기 4: 16절)
 이 순간 가인은 계속해서 비뚤어지기만 했습니다. (창세기 4: 16)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여기서 “주의 얼굴을 떠나”라고 말한 표현이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멀어지는 것, 곧 하나님과의 분리를 말한 것입니다. 가인은 스스로 하나님을 떠나기로 선택했습니다.
이 기록은 그가 죄 사합을 받을 수 있는 희생 제사를 드리는 곳으로부터 멀리 떠나버린 것을 의미한다. 희생 제사를 드리는 곳은 특별히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생각된다.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희생 제사를 드리는 장소는 하나님께서 생명나무를 지키게 하기 위하여 그룹들과 화염검을 두신 에덴동산 동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3:24 참조). 비록 가인이 희생 제사를 드리는 곳으로부터 멀리 달아날 수는 있었다 할지라도, 그는 전지전능하시며 무소부재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달아날 수는 없었다.
아담의 죄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내적 테두리로부터 추방당하게 하였다. 반면에 가인의 죄는 외적 테두리로부터 추방당하게 하였는데, 이것은 결국에는 둘째 사망을 겪게 하는 것이다. 가인의 경우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을 배운다. 가인에게는 희생 제사를 드리는 장소가 주어졌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주어진 것이다. 구약 시대의 희생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 되실 그때를 미리 예정하는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그러한 희생 제물이 되신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우리는 과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성취하신 것을 뒤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가인이 거한 땅은 어디였습니까? 가인은 여호와 앞을 떠나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했습니다. 놋은 “방랑”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가인의 삶이 불안과 고독 가운데 살게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결론>
가인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을 고의적으로 거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가인은 자신의 죄를 자백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렇게 하기를 거절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얼굴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 우리는 가인으로부터 죄를 회개하기를 고의적인 거절할 때, 자기 죄 문제를 처리하지 못하게 됨으로 결국은 스스로 하나님을 등지는 무서운 결과로 이어지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인생은 고독과 방랑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나가는 말

구약성경은 죄를 짓고 하나님 앞을 떠나 세상에서 방황하는 인간들을 향해,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여전히 죄악가운데 살아가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실제로 사람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오신 구원의 역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로 말미암아 더 이상 세상 가운데서 고독과 불안과 두려움의 인생을 살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당신은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 한 채 끝없이 세상에서 방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어느 누구에게도 구원의 문을 닫지 않으셨습니다. 돌아오라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사랑 앞에 매달리며,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십시오. 나를 사랑하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분 안에서 참된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새 삶을 사십시오.


<기도로 나가기>

 예수 그리스도 없이, 하나님 앞을 떠나 살았던, 우리의 지난 인생은 쉼 없는 방황의 삶이었던 것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우리의 방황 가운데 오셔서, 우리를 건지시고 참 안식과 기쁨의 삶으로 회복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