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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을 운행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1:2)

my gospel 2024. 2. 13. 13:35

 

수면을 운행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1:2)

<2> 수면을 운행하시는 성령님
창조무대에 주인공으로 나타나신 성령하나님
창 1:2

하늘문교회 한근호 목사

들어가는 말

창세기는 시작의 책입니다. 창세기에는 우주 ․ 인간 ․ 결혼 ․ 죄 ․ 문명 등의 시작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작의 책인 창세기의 첫 장은 시작 중에서도 시작인 천지 창조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지 창조야말로 성경 전체의 역사와 모든 신학의 토대가 됩니다. 지난 말씀에서는 1절을 살펴보았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에서는 태초에 창조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은 설명이 아니라 선언으로 시작됩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따지고 논쟁하면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논쟁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경배하면 하나님이 보입니다. 그분은 예배의 대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에게 무릎 꿇고 나아가 기도하며 찬양하며 죄를 고백할 때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십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 1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믿고 고백할 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는 자에게 창세기는 문을 엽니다. 자기를 공개하기 시작합니다.



(창세기 1장 / 개역개정)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가운데 말

1절에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라고' 하는 웅장한 선언을 한 후 구체적으로 창조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2절에 나와 있습니다.
창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והארץ היתה תהו ובהו וחשׁך על־פני תהום ורוח אלהים מרחפת על־פני המים׃
 
성부하나님과 성자하나님만 동참한 것은 아닙니다. 2절을 보면 성령 하나님도 천지창조사역에 직접 개입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 혼돈 공허 흑암 가운데 있는 세상(2a)
땅은 지구를 의미합니다. 최초의 지구 상태를 세 가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혼돈, 공허, 흑암’이라고 했습니다.
󰃨 땅 - 접속사(*, 웨)와 정관사(*, 하)가 붙어 있어 직역하면 '그런데 그 땅'이다. 여기서는 '지구'를 가리킨다.
 
󰃨 혼돈하고 -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지구에 생명체가 살 수 있을 정도로 아직은 정돈된 상태가 아님을 보여 주는 말이다. 즉 '혼돈'에 해당하는 원어 '토후'(*)는 '공허', '헛된 것'(삼상 12:21;사 40:17)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데 전혀 형체가 없거나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상태를 의미한다.
 
󰃨 공허하며- 원어 '보후'(*)는 사 34:11; 렘 4:23에서 '공허한'(void)으로 번역되었는데 이것 역시 '토우'와 마찬가지로 미처 아무것도 갖춰지지 않는 적막한 상태, 무가치한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혼돈하고 공허하였다'란 의미는 지구가 아직 조화된 모습을 갖추고 있지 않고, 따라서 아무런 생명체도 살고 있지 않은 무질서하고 텅 빈 상태였다란 뜻이다. 한편 본절의 '하고...' 하면은 카오스적인 존재(存在, was) 상태를 뜻하는 말이지 일부 학자들의 주장처럼 거역한 사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은 변이(變移, become)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먼저 “혼돈하고 공허하며”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지구 위에 어떤 생명체가 하나도 없는 상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지구는 아직은 황량하고, 무질서하고, 텅 비어 있고, 무가치한 상태였습니다.
 
󰃨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 여기서 '흑암'은 단순히 빛에 대칭되는 어두움의 개념이 아니라 창조 이전 빛이 없는 상태를 포괄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한편 공동 번역은 이를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고'로 번역하였다. 왜냐하면 '깊음'에 해당하는 원어 '테홈'(*)은 때로 '깊은 바다'(시 42:7;겔 31:15)나 지하물의 근원지(7:11; 시 78:15)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아마 이는 창조된 원시 형태의 지구가 물 혹은 물 같은 유동체로 덮여있었으며 사면에는 칠흑 같은 어둠만이 있었을 뿐임을 뜻하는 것 같다.
 
다음으로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라는 말씀은 단순히 밝음의 반대 개념으로서 어둠이 아니라, 빛이 창조되기 이전의 근본적인 암흑 상태를 의미합니다. 흑암이 얼마나 강했던지,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깊음”은 “물결치다”, “동요하다”란 뜻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이는 마치 깊은 바다에서 큰 파도가 물결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라는 말씀은 혼돈, 공허, 흑암 등과 더불어 아직 빛, 질서, 생명체 등이 존재치 않는 원시 지구 상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1절에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지만, 아직 창조가 완성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구의 모습은 혼돈과 공허였습니다. 어두움만 있었습니다. 이 지구상에 생명체가 있기 전
에는 무질서였습니다. 그저 물질일 뿐인 혼돈과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어두움만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영역을 설명한다면 영원하신 삼위일체의 제2위께서 사시고 일하시며 증거 하시고 피 흘리시며, 그리고 죽으시는 세계였다. 그가 이렇게 하신 목적은 방황하는 세계 속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완전성을 나타내 보이기 위함이었다.
 


수면을 운행하시는 성령님 (창 1:2)


2. 질서 충만 빛으로 채우시는 성령 하나님의 사역(2b)
1) 하나님의 영
󰃨 하나님의 영(*, 루아흐 엘로힘). - '루아흐'는 때로 '바람'(8:1)이나 '숨'(욥 9:18)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러므로 혹자는 이를 하나님께서 깊은 물의 표면에 불게 하신 바람으로 이해하기도 하나 실은 그렇지 않다. 여기서는 어디까지나 제3위 하나님 되시는 '성령'을 가리키는 말로 천지 창조 시부터 이미 삼위 하나님께서 서로 협력하여 사역하셨음을 암시해 주는 말로 이해하여야 한다(26절). 혹자는 성령께서 신약 시대에야 비로소 활동하신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데(행 2:1-4) 성경은 성령께서 이미 구약 시대부터 여러모로 활동하였음을 이미 구약 시대부터 여러모로 활동하였음을 분명히 증거 해 준다 (출 35:31; 삿 3:10; 왕하 2:1215; 대상 12:18;겔 11:24).
 
“하나님의 영”은 원어 성경에서 “루아흐 엘로힘”입니다. 여기서 “루아흐”라는 히브리어가 “영”(神)으로 번역되었는데, 이는 “바람” “입김” 또는 “생기”란 뜻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바람, 하나님의 생기, 하나님의 영은 누구를 지칭하는 말씀이겠습니까? 바로 성령 하나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
우리는 여기에서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 아니라 세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즉 성부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인 성자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성령 하나님이 창조의 무대에 주인공으로 나오고 있는 사실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 혼자 일하지 않으셨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세분이 함께 일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가리켜 ‘엘로힘’이라는 복수형을 씁니다.
 
행 2: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행 2: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행 2: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행 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사도행전 2장에서는 초대교회에 일어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순절 날 성령께서 마가 다락방의 120문도(門徒)에게 임하셨습니다.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은 성령 하나님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겔 37:10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에스겔서 37장에서는 에스겔 골짜기에 마른 뼈들이 가득했습니다. 이 뼈들이 어떻게 살아났습니까? 살게 하고 군대가 되게 하는 “생기”는 바로 성령 하나님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 호흡이 지구를 감싸
흑암과 혼돈과 공허가 있는 달나라와 같은 지구에 ‘하나님의 신’이 찾아왔습니다. 성령님이 찾아와서 지구를 감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은 바로 ‘루하흐’인 바람입니다. 바람이 부는 것입니다. 성령의 기운이 지구를 돌았다는 것입니다. ‘루하흐’는 ‘바람, 숨, 호흡’등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 즉 호흡이 공허하고 흑암이 있고 혼돈이 있는 지구를 돌고 있었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입니다.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입니다. 이 생명을 만드신 하나님의 신인 성령님이 땅과 하늘을 만들고 동물과 빛을 만들고 계셨습니다.
 
여기 진실로 하나님이 홀로 활동하실 수 있었던 한 장면이 나온다. 인간은 교만한 마음으로 저 높은 활동의 영역에서 하나님을 간섭해 보려고 온갖 노력을 해보지만 그것이 실패였음을 스스로 입증할 뿐이다. 그런데 지금 본문에 나타난 장면에서 볼 때, 진실로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피조물에 불과한 자로서 창조적 능력을 지닌 주인이 되는 데는 전연 개입하지 못했다. 창조 행위에는 오직 하나님만이 가담하셨다. 하나님은 그의 영원한 빛의 거소(居所)로부터 황폐한 세상을 바라보셨고, 바로 그 빛의 거소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섭리가 계시되고 실천될 세계를 관망하셨다.
 
2)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 운행하시니라 - 원뜻은 '알을 품다', 따라서 이 말은 이미 새가 새 생명의 탄생을 열망하며 알을 소중히 감싸 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대로 지음 받을 인간의 삶의 장소를 조성하시기 위해 깊은 관심으로 포근하고 소중하게 돌보심을 의미한다.
 
성령님께서 “수면에 운행하시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분사 형태로 된 이 단어로) “계속해서 알을 품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어미 새가 알을 부화하기 위해 알을 품고 있는 것과 같이, 성령 하나님께서 세상을 향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창조 사역을 진행하고 계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신이 운행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움직였다’ 혹은 ‘흔들었다, 진동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신이 운행했다는 말은 물체의 위에서 영향력이나 기운을 내리쏟았다는 말입니다.
이 뜻을 조금 더 원어적으로 이해해 보면 암탉이 계란을 품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계란을 그저 품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온도 안에서 굴리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님께서 이 지구를 감싸고 하나님의 생명을 집어넣은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창조입니다.
지구를 하나의 계란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어미닭이 계란을 품고 있듯이 성령님이 지구를 품고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신비스럽고 엄청난 사실입니까? 이것은 마치 생명이 어머니의 태 속에서 자라나는 것과 같습니다. 수정된 지 몇 개월 되지 않아서 아이의 심장은 뛰고 오장육부가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뇌가 그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의 신” 즉, “하나님의 생기”는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성령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 놀라운 창조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3절부터 구체적으로 보겠지만, 성령님이 수면에 운행함에 따라 흑암이 사라지고 광명이 나타났으며 혼돈이 사라지고 궁창이 나타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해와 달과 별이 나타났고 뭍이 드러나고 실과 맺는 초목들이 나타났으며 새와 물고기와 곤충과 온갖 짐승들이 나타났습니다. 끝으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만드시고 이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성경에서는 (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장차 활동하실 세계를 품고 계셨다. 진실로 어두운 세계지만, 바로 이 영역에는 빛과 생명의 하나님이 활동하시기에 충분한 여지가 있었다. 하나님만이 어둠을 밝히시고, 생명을 생겨나게 하시며, 혼돈을 질서로 대치하시고, 물과 물을 갈라놓으실 수 있다. 여기에서는 죽음의 두려움 없이 생명이 나타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 합당한 작업들이었다.
 


수면을 운행하시는 성령님 (창 1:2)


3. 지금도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국제 정세는 늘 불안정합니다. 북한 핵문제는 한반도의 안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강대국 속에서 한민족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합니다. 국내 정치도 혼탁합니다. 공의롭지 못한 정치문화, 여전히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지역주의, 좌우 이념 분쟁으로 깊어져만 가는 갈등이 이 나라를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경제도 어지럽습니다. 늘어만 가는 청년실업, 더 벌어지는 양극화 현상, 아직도 자리를 잡지 못한 채 갈등하는 노사관계가 우리의 장래를 낙관할 수 없게 만듭니다. 그래도 예전에는 따뜻한 안식처였던 가정도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가정 경제, 늘어나는 이혼으로 인해 깨어진 가정들, 탈선하는 청소년 문제, 질병으로 인한 어려움, 이제는 노인문제까지 우리 가정이 풀기에는 녹녹하지 않은 문제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은 정말로 창세기 1장 2a에 말씀하고 있는 대로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인간적인 안목으로 볼 때 우리의 장래는 암울하기만 한 것 같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성령 하나님의 운행하심입니다. 2절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을 원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께서 혼돈과 공허와 흑암에, 질서가 생기고, 충만케 되고, 빛이 비취는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절망과 죽음 가운데 있는 인생이 영생의 삶으로 변화됩니다.(요 3:1-8)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면 무기력하게 뒹굴고 있는 마른 뼈다귀와 같은 인생들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케 되어 하나님의 군대로 힘차게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겔 (겔 37:1-10) 성령 하나님께서 임하시면 “혼돈과 공허와 흑암” 가운데 있는 이 땅이 생명으로 충만케 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운행하시면 흑암이 광명으로, 무질서가 질서로, 죽음이 생명으로, 저주가 축복으로 변화되는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면 정치가 공의로 바로 서며, 경제가 정직으로 세워지며, 가정이 사랑으로 회복되며, 교회가 거룩함으로 충만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죽은 영혼 살리는 생명의 영
우리는 2절의 말씀에서 더 깊은 진리를 묵상하게 됩니다.
첫째는 성령님의 역사와 능력입니다. 창세기는 과학적으로, 합리적으로 접근하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천지창조는 성령님이 하셨습니다. 성령님이 지구를 품고 생명을 불어넣어 주셨기
때문에 우주에 존재하는 어떤 별에도 생명이 없지만 지구에는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 생
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성령을 받는 자마다 생명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살아났을 때 성령의 생명의 영이 부활시키셨습니다. 여러분 안에도 생명의 영이 들어가게 되면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게 될 것이며, 죽은 영혼이 다시 거듭나고 부활될 줄 믿습니다. 이분이 성령님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성령님은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성령님은 바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성령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실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시며, 죽었던 우리를 살게 하시며, 기쁨이 있게 하시며, 감사와 감격이 넘치는 살아있는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들의 신앙이 미온적인 이유는 성령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2절에 나타난 혼돈과 공허와 흑암으로 가득 차 있던 이 지구에 성령이 임함으로 생명력이 생기고 놀라운 창조의 역사가 생겼던 것처럼 성령님이 여러분 안에 임하시면 생명이 임하고 능력이 임할 줄 믿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이 성령님에 관심이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성령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성령님의 창조의 능력을 현실에서 다시 발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대부분의 많은 크리스천들은 너무나 비참하게 살고 있습니다. 모두 ‘‘예수 믿는 것이 다 그렇고 그런 거지 별게 있는가?’라며 자기 수준으로 끌어내립니다.. 하나님을 자신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신 분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나의 영적 정도가 신앙의 전부가 아닙니다. 내가 살고 있는 신앙은 아주 밑바닥일 수 있고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성령과 생명은 따분한 것이 아닙니다. 감사와 감격, 기쁨, 확신입니다. 고난, 위기, 아픔, 어떤 실망과 죽음도 모두 이겨낼 수 있는 성령님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이 오늘 여러분에게도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나가는 말

 
창조에 있어서 깊이 생각할 것이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드셨지만 그 창조의 과정 중에 성령이 함께 계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성령님을 만나면 창조의 신비를 경험하게 됩니다. 성령세례를 받으십시오. 성령의 인치심을 받으십시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그때 여러분은 하나님의 능력을 몸으로 느끼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신묘막측한 것을 내 안에서 느끼기 시작합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이 성경을 읽을 때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성령님이 계셔야 합니다. 성령님이 없이 인간의 이성과 경험과 생각, 상식으로 하나님께 접근한다면 그것은 지식이 상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겸손하게 무릎 끓고 성령님을 받아들이고 성령님이 운행하심을 사모하고 성령의 운행하심이 내 영혼을 감싸고 있었을 때 말씀을 듣거나 읽거나 묵상하면 그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날 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우리의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며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통찰하는 놀라운 역사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때 귀신들이 떠나갑니다.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성령님이 운행하심으로 나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기도로 나가기

오, 성령 하나님 우리 가운데 임하시옵소서!
어디로 갈 바 몰라, 혼돈 가운데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임하시옵소서!
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해,
거짓 신들과 우상 앞에 절하는 무지한 인생들을 구원해 주시옵소서!
 
오, 성령 하나님 우리 가운데 임하시옵소서!
이 땅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술과 쾌락과 돈을 좇아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만족하지 못한 채, 공허 속에 헤매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성령 하나님, 그들 가운데 진정한 위로자로 임하셔서 영원한 만족이 되어 주시옵소서!
 
오, 성령 하나님 우리 가운데 임하시옵소서!
우리 안에 있는 모든 흑암들을 회개하오니,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를 정결케 하옵소서!
하나님의 교회로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나라와 반대되는 흑암의 세력을 능히 물리치게 하옵소서!
주의 진리만이 이 땅 가득하게 하옵소서!
 
오, 성령님, 우리 심령 가운데, 우리 가정 가운데, 우리 교회 가운데, 이 나라 이 민족과 북한 땅과 온 열방 가운데 임하시옵소서!